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간결한 디자인… 북구의 척박한 환경이 준 선물
입력 : 2020.02.01 03:00
['핀란드 디자인 10,000년'展]
수시로 배 타고 이동하는 생활에서 욕심을 버린 검소한 디자인 탄생
걸치기 쉽도록 둥글게 깎은 물지게, 가죽 덧대 오르막길 갈 수 있는 스키
아주 오래전부터 핀란드 디자인은 사람을 중심에 뒀다는 걸 알 수 있죠
가구, 육아용품 그리고 스포츠용품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북유럽 제품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북유럽 국가들로는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와 더불어 핀란드와 아이슬란드까지 포함돼요. 고대 서유럽에서는 북유럽 사람들을 일컬어 바이킹 해적들, 혹은 덩치만 큰 바바리안(야만인)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주로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역사에 익숙하기 때문에 북유럽은 오래도록 문명에서 뒤져 있었다가 요즘 들어 갑자기 떠올랐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달 21일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전시에서는 북유럽의 뛰어난 디자인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빙하기 이후인 1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여줍니다. 핀란드를 중심으로 새로 쓰는 문명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전시는 4월 5일까지 계속됩니다.
◇핀란드의 검소한 디자인
여러분은 놀이공원에서 타본 바이킹 배가 북유럽 선조들의 배였다는 사실을 아세요? 핀란드 사람들도 바이킹 배처럼 길고 폭이 좁으며 앞뒤가 뾰족한 배를 주로 만들었어요. 그런 배여야 폭이 좁은 강을 다니기 쉬웠고 밑이 납작해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걸릴 염려가 없었거든요. 또 가볍기 때문에 육로에선 몇 사람이 번쩍 들어 올려 운반할 수도 있었다고 해요.
우리는 주로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유럽 역사에 익숙하기 때문에 북유럽은 오래도록 문명에서 뒤져 있었다가 요즘 들어 갑자기 떠올랐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달 21일부터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핀란드 디자인 10,000년' 전시에서는 북유럽의 뛰어난 디자인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 빙하기 이후인 1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여줍니다. 핀란드를 중심으로 새로 쓰는 문명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전시는 4월 5일까지 계속됩니다.
◇핀란드의 검소한 디자인
여러분은 놀이공원에서 타본 바이킹 배가 북유럽 선조들의 배였다는 사실을 아세요? 핀란드 사람들도 바이킹 배처럼 길고 폭이 좁으며 앞뒤가 뾰족한 배를 주로 만들었어요. 그런 배여야 폭이 좁은 강을 다니기 쉬웠고 밑이 납작해 수심이 얕은 곳에서도 걸릴 염려가 없었거든요. 또 가볍기 때문에 육로에선 몇 사람이 번쩍 들어 올려 운반할 수도 있었다고 해요.
- ▲ ①물지게(bucket yoke), 나무-끈, 89x70㎝, 퓌헤마 출토. ②접이식 의자 '트라이스(Trice)', 섬유 유리-캔버스 천, 한누 케회넨 디자인(1985). ③스키(skis), 나무-물개 가죽, 250x12㎝, 이나리 출토. ④남성 양복, 디지털 프린팅한 면, 투오마스 라이티넨 디자인(2009). /국립중앙박물관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도구의 예를 들어볼까요? 작품1을 보세요. 이것은 물을 지고 갈 때 어깨에 걸치는 물지게인데, 양쪽에 물 양동이를 매달게 되어 있어요. 물 양동이에 물을 채우면 무거워지기 때문에 도구의 무게는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지요. 반면 목과 어깨에 닿는 부분이 조각된 형태라든가, 양동이를 고정하는 끈의 위치를 보면 만드는 이가 사용할 사람의 신체를 철저하게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작품2는 이런 디자인 철학이 오늘날까지 반영된 경우입니다. 1985년 고안된 이 의자는 등산이나 낚시할 때 들고 가는 접이식 의자인데, 무게가 고작 1.3㎏으로 배낭의 짐을 더 무겁게 하지 않도록 아주 가벼워요. 섬유 유리로 만든 수직의 봉들을 좌우로 끌어당기거나 모으면 그에 따라 천 부분의 면적이 늘어나거나 줄어들어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디자인 선호
핀란드 디자인이 뛰어난 둘째 이유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명의 발전을 기술의 발달과 동일하게 여겨왔습니다. 기술 혁신 덕분에 점차 사람들은 자기 몸을 직접 쓸 필요 없이 기계에 일을 시키는 일이 많아졌어요. 최근 개발 중인 무인자동차처럼 아예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경우도 많지요.
하지만 핀란드식의 문명 개념은 달라요. 핀란드에서는 사람과 도구가 함께 더 기능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을 선호했거든요. 이 지역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은 바퀴가 아니라 스키였어요. 스키는 눈과 얼음 위에서 바퀴처럼 잘 미끄러지도록 만들어져 있어요. 바퀴가 자동차를 탄생시켰다면, 스키는 인간이 몰고 가는 썰매를 탄생시켰지요.
작품3은 핀란드에서 오래전에 사용하던 스키예요. 이 스키는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바닥 면과 발이 닿는 부분에 물개 가죽을 덧대었어요. 물개 털의 방향에 맞추면 더 잘 미끄러져 속도를 낼 수 있었고, 털 반대 방향으로 가면 마찰력이 생겨서 언덕을 오를 수 있었답니다. 안전하면서도 활동하기 편리한 스키를 만들기 위해 탐구했다는 게 느껴져요.
작품4는 현대에 이르러 보다 철학적으로 '주체적인 인간'을 고민한 옷입니다. 핀란드 출신 유명 패션 디자이너 투오마스 라이티넨이 2009년 디자인한 이 양복에는 '테크 그리드(Tech grid)'라고 불리는 독특한 격자무늬가 그려져 있어요. 공상 과학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레이저 빔'을 떠올리게 하죠. 그래서 이 옷을 입는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미래에 대해 상상하게 돼요. 미래에는 사람이, 그리고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게 되죠. 옷이 입는 사람의 사유까지 끌어내는 디자인입니다.
썰매는 수준이 낮고 자동차는 뛰어나다는 식으로 문명의 발달을 이해하던 시대는 이제 지났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자연을 훼손해가며 기술 혁신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릴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에 적응하며 창의적으로 생존하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점에서 핀란드 디자인은 배울 점이 참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