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두 남자가 애타게 기다린 '고도'는 누구일까

입력 : 2020.01.17 03:09

[사뮈엘 베케트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두명의 인물이 '고도' 기다리지만 사건 진행 없이 무의미한 대화뿐
종교적 구원자, 2차대전 종전 등 고도가 상징하는 의미에 의견 분분
이치에 안 맞는 상황 그린 부조리극, '고도…' 필두로 20세기 중반에 유행

커다랗고 높은 담벼락을 따라 도착한 곳은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두꺼운 잿빛 구름 아래, 비에 젖은 묘비들은 주인의 이름을 가리려는 듯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죠. 아, 드디어 찾았습니다. 밤새 떨어진 낙엽이 온통 이름을 가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어요. 사뮈엘 베케트(Beckett·1906~1989).

세계 연극사의 이정표와도 같은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베케트는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 폭스로크의 유복한 신교도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바닷바람이 숲을 스쳐 가면 나뭇잎 소리만 들리던 낮은 언덕 사이에 자리 잡은 그 집에서 소년은 자라났죠. '고도를 기다리며'의 적막한 무대는 어린 베케트를 둘러싸고 있던 풍경이었어요.

1927년 대학을 졸업한 베케트는 파리에 있는 파리고등사범학교 영어 강사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정착한 곳이 바로 그의 묘가 있는 파리 몽파르나스입니다. 첫 번째 소설 '머피'가 런던에서 출간되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죠.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돕던 베케트는 아내 수잰과 함께 남프랑스로 피신해서 소설 '와트'를 완성해요.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구상하게 됩니다.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정체 모를 두 인물,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이렇다 할 줄거리도 없이 결국 '고도씨는 오늘 밤에 못 오지만 내일 올 예정'이란 황당한 결말은 관객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던졌어요.

지난해 국립극단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입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두 부랑자 에스트라공(왼쪽), 블라디미르가 황량한 나무 아래에서 미지의 인물 ‘고도’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대화로 3시간을 채웁니다.
지난해 국립극단 ‘고도를 기다리며’ 공연 장면입니다.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두 부랑자 에스트라공(왼쪽), 블라디미르가 황량한 나무 아래에서 미지의 인물 ‘고도’를 기다리며 주고받는 대화로 3시간을 채웁니다. /국립극단

베케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1월 5일 파리 바빌론 소극장 무대에서 역사적인 초연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시와 소설을 쓰다가 47세의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발표한 희곡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대성공을 거두면서 지금까지도 세계 50여국 무대에 오르고 있죠.

많은 사람이 '고도'가 어떤 인물인지, 무엇을 상징하는지 궁금해해 왔습니다. 흔히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그토록 고대하고 기다리는 '고도'를 종교적 의미의 구원자로 연결하기도 해요. 영어 원제는 'Waiting for GODOT'인데, '고도(GODOT)'가 영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신을 뜻하는 'God' 와 'Dieu'의 합성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곁에는 아내 수잰밖에 없는 외로운 피신 생활 속에서 베케트에게 고도는 종전 소식이었을 테고, 아내 수잰은 고도를 함께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이자 에스트라공이 아니었을까요.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전쟁도 끝나고 베케트는 이 희곡으로 세계적인 작가로 이름을 알리게 된 거죠.

영국의 연극학자 마틴 에슬린은 이 작품을 본 후 '부조리 연극'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를 중심으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부조리한 상황을 제시하며 서유럽을 풍미한 부조리극은 새로운 연극 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베케트의 엄격한 이미지,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의 난해함 때문에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이 작품을 제 인생 최고의 작품으로 꼽습니다. 그 고통스러운 인생의 비애 속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 때문이에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즐겨 보고 낙서광이었던 베케트는 웃음의 위대함을 알고 있는 작가임이 분명했습니다. 베케트의 열광적인 독자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죠. "베케트 선생님, 저는 일생 선생님의 열렬한 찬미자였고 40년 전부터 죽 선생님의 책을 읽어왔답니다." 베케트의 대답은 "그거, 참 피곤하시겠소"였다고 하죠.

[인터뷰 꺼리던 '침묵의 작가' 노벨문학상도 친구가 대리 수상]

사뮈엘 베케트

베케트〈사진〉는 사생활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고, 이름이 점차 알려져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심지어 노벨 문학상 수상조차 그의 오랜 벗이었던 출판 편집자가 대신했을 정도입니다. '침묵의 작가' 베케트라고 불러야 할까요?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미국의 은둔 작가 J D 샐린저(1919~2010)와 닮았습니다.

그렇다고 베케트가 내성적인 성격은 아니었어요. 오스카 와일드의 모교이기도 한 포트라 로열 스쿨에 입학해서 최우수 학생으로 선발될 정도로 공부도 잘했고 크리켓, 수영, 럭비 경기에 선수로 참가하며 스포츠맨의 자질을 보여 주기도 했어요.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