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유겸의 스포츠로 세상 읽기] 네트 20㎝ 낮아 역동적 경기 펼쳐… 남자배구보다 인기

입력 : 2020.01.14 03:05

여자배구

축구·농구·수영·골프 등 남녀 프로리그가 있는 종목에서 보통 남성 리그가 여성 리그보다 인기가 높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 여성 스포츠가 남성 스포츠의 인기를 추월한 종목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배구입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발표한 2019~2020시즌 V 리그 1라운드 결산 자료를 보면 여자부 경기 평균 TV 시청률은 0.89%로 남자부 시청률(0.82%)을 앞질렀다고 해요. 경기당 평균 관중도 여자부가 2388명으로 남자부(2183명)보다 많았습니다. 여자 배구가 남자 배구보다 인기가 더 좋다는 말은 많이 나왔는데 이번에 시청률과 현장 관중 수로 확인된 겁니다.

이런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여자 배구의 네트 높이가 남자보다 20㎝가량 낮은 게 비결 중 하나로 꼽힙니다. 국제배구연맹(FIVB)은 남자(2.43m)와 여자(2.24m)가 높이가 다른 네트를 사용하도록 정하고 있거든요.
지난해 9월 열린 여자 배구 월드컵 일본전에서 우리나라 김희진 선수가 네트 한참 위에서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어요. 여자 선수들은 남자만큼 높이 뛰지는 못하지만 네트가 20㎝ 낮아 남자 배구만큼이나 역동적입니다.
지난해 9월 열린 여자 배구 월드컵 일본전에서 우리나라 김희진 선수가 네트 한참 위에서 스파이크를 날리고 있어요. 여자 선수들은 남자만큼 높이 뛰지는 못하지만 네트가 20㎝ 낮아 남자 배구만큼이나 역동적입니다. /국제배구연맹
네트 높이가 낮기 때문에 키가 상대적으로 작고 점프력이 떨어지는 여자 배구 선수들도 경기 중 남자 선수들과 거의 같은 종류의 기술을 선보입니다. 후위공격도, 스파이크 서브도 남성 선수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관중은 선수들의 높이, 운동 능력, 기술 수준 등을 비교해 판단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배구에서 네트 높이는 경기력과 화려함에 모두 중요한 요소죠. 경기를 보는 팬은 선수들이 얼마나 높게 네트 위로 떠올라 스파이크나 블로킹을 펼치는지 보는데, 네트가 낮으면 여자 선수들이 남자 선수들보다 객관적인 높이와 점프력에서는 떨어져도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는 '착시현상'이 생깁니다. 낮은 네트 효과 때문에 여자 배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선 남자 배구와 경기력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 것이죠. 우리나라 배구는 여자 경기가 더 수준 높고 재미있다고 말씀하시는 팬이 적지 않은 데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배구의 특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여자 배구가 남자 배구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FIVB 배구 월드컵'에서 남자부 관중은 15만2460명에 그쳤던 반면, 여자부는 7만명 가까이 많은 21만9802명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게 여자 농구입니다. 남자 선수와 같은 높이(3.05m)의 골대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여자 농구 선수 중 림 위에서 내리꽂는 기술인 덩크를 할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소수입니다. 배구와 달리 여자 선수들 경기력이 떨어져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녀의 골대 높이가 같아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효과입니다.

미국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학 입학 전형에서 우대하는 '적극적 조치(Affirmative Action)'를 폅니다. 일종의 적극적 조치인 낮은 네트를 통해 여자 배구는 '여자 경기는 남자 경기보다 재미없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렸습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