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집집마다 8일간 초 밝혀… 2100년前 예루살렘 탈환 기념

입력 : 2020.01.08 03:00

[유대교 명절 '하누카']
기원전 165년, 시리아 왕조와 싸워 유대인들이 조상들 땅 되찾은 날
양력으로 11월 말~12월 말 사이… 아홉갈래 촛대 불 밝혀 창가에 둬
하루동안 초 밝힐 양의 기름으로 8일간 타올랐다는 일화에서 유래

지난해 12월 28일 미국 뉴욕에서 유대인 명절인 하누카 행사 중 유대인을 대상으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5명이 다쳤어요. 경찰은 반유대주의자의 소행으로 보고 있죠. 하누카는 히브리어로 '봉헌'이라는 뜻으로 키슬레브월(히브리력의 아홉 번째 달)의 25일부터 8일간 치러지는 유대교의 중요 명절이에요. 양력으론 11월 말~12월 말 사이에서 해마다 날짜는 다릅니다. 기독교의 크리스마스에 비견되기도 합니다.

화가 루벤스가 그린 '유다 마카베오의 승리'.
화가 루벤스가 그린 '유다 마카베오의 승리'. 유대인들의 문화를 억압하던 시리아 안티오코스 4세에 맞서 유다 마카베오(붉은 망토를 두른 사람)가 예루살렘을 탈환한 순간이 묘사돼 있다. /위키피디아
이 기간 중 가장 중요한 의식이 '하누키아'라 불리는 촛대에 불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전통은 기원전 2세기 하스몬 가문이 시리아 왕조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되찾은 것을 계기로 생겨났어요. 하누카는 어떻게 탄생했으며, 하누카를 만든 하스몬 가문은 어떻게 됐을까요?

예루살렘 되찾은 뒤 8일간 촛불 밝혀

기원전 168년 이스라엘 남부인 유다 전역을 통치하고 있던 시리아의 안티오코스 4세는 유대인들의 문화를 그리스식으로 바꾸고자 했어요. 이를 위해 안식일을 철폐하고 율법서를 압수하는 등 유대교 예법을 금지했죠. 제단에 유대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짐승인 돼지를 제물로 올리기도 했어요.

이에 유대인들은 크게 반발했고, 예루살렘 북쪽 마을인 모데인에서 전투가 시작됐어요. 주동자는 이 마을의 제사장 마타티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이었습니다. 특히 사람들은 가장 잘 싸웠던 셋째 아들 유다를 '유다 마카베오(히브리어로 '망치'라는 뜻)'라고 부르며 칭송했습니다. 그의 별명을 따서 이를 '마카베오 혁명'이라고도 부르지요.

하스몬 왕조 최대 영토, 하스몬 왕조 설립 당시
기원전 165년 키슬레브월 25일, 유다는 마침내 예루살렘을 탈환합니다. 유다는 성전을 정화하는 의미로 촛대에 불을 붙여 신에게 봉헌하려고 했어요. 이방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성스러운 기름 한 병을 찾았지만, 겨우 하루 정도 촛대를 밝힐 양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8일이 지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일을 기려 매년 이맘때 8일 동안 불을 밝히는 전통이 생겨났습니다.

형제간 세력 다툼에 로마 끌어들여 몰락

유대인들이 시리아에서 완전히 독립한 것은 유다가 죽은 뒤 유다의 형 시몬이 지도자가 됐을 때였어요. 기원전 142년 시리아는 시몬과 평화 조약을 맺고 그를 유대인의 독립된 지도자로 인정했어요. 그는 가문의 조상 하스몬의 이름을 따 하스몬 왕조를 세웁니다. 이후 기원전 63년까지 79년 동안 하스몬 왕조가 이어집니다. 지금 이스라엘 땅에 세워진 유대인의 마지막 독립왕조였죠.

하스몬 왕조는 시몬의 증손자 힐카누스2세와 아리스토불루스 2세 형제가 권력 다툼으로 몰락합니다. 이들은 왕위 다툼 끝에 로마, 즉 외세를 끌어들이는 우를 범했어요. 두 형제의 요청으로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중재하겠다고 나섰지만, 속으로는 이곳을 장악하고자 했어요. 그는 크라수스, 카이사르와 삼두정치를 펼쳤던 바로 그 인물입니다.

기원전 63년 로마군은 유대인들이 쉬는 안식일을 택해 성을 부수고 들어갔어요. 로마와 협상을 거부한 아리스토불루스 2세는 로마 포로로 끌려갔고, 로마와 타협했던 힐카누스 2세는 대제사장 자리를 얻었지만 실질 권한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79년간 유지되었던 하스몬 왕조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어요. 로마에 복속된 이후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될 때까지 유대인들은 독립국가를 갖지 못합니다.


[촛대 '하누키아'에 불 밝히고 감자요리 '라트키' 먹어요]

하누카는 가지가 아홉 개인 촛대 '하누키아〈사진〉'에 불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돼요. '샤마시'라고 불리는 가운데 초에 가장 먼저 불을 붙인 뒤, 나머지 8개 촛대에 8일 동안 매일 밤 한 개씩 새로운 불을 밝히게 되지요. 하누키아는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함께 기념할 수 있도록 집 앞쪽 창가에 놓아둡니다.

하누키아
/AFP 연합뉴스
하누카엔 '라트키'라는 감자 요리를 해먹어요. 라트키는 한국의 감자전과 비슷한데, 하누카가 탄생하는 데 기름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되새기는 뜻에서 기름을 많이 쓴 요리를 먹는 것이랍니다. 하누카엔 기름에 튀긴 도넛 '수프가니오트'도 즐겨 먹습니다.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