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프로젝터로 영상 쏘면… 차가운 건물에 여러가지 표정 생겨요

입력 : 2020.01.01 03:00

프로젝션 매핑

지난 20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외벽이 '빛의 캔버스'가 됐습니다. 터키 출신 미디어 아티스트 레픽 아나돌(34)의 영상 작업 '서울 해몽'이 DDP 외벽을 스크린 삼아 다음 달 3일까지 펼쳐지고 있거든요. 동대문과 관련된 과거 이미지 자료 3만5000장 등을 활용해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만든 16분 길이의 영상 작품입니다. 고성능 프로젝터로 DDP 외벽에 가로 223m, 세로 54m 크기로 펼쳐집니다.

이렇게 건축물 외벽에 프로젝터로 영상을 쏘아 표현하는 기법을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이라고 합니다. 실제 존재하는 물체에 가상의 이미지를 프로젝터로 쏘아 덧입히는 방식을 통칭합니다. 즉 빛이 물감이 되고, 물체가 캔버스가 되는 셈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월트디즈니콘서트홀(왼쪽) 외벽에 LA 필하모닉 창립 100주년 기념 프로젝션 매핑이 펼쳐진 모습.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월트디즈니콘서트홀(왼쪽) 외벽에 LA 필하모닉 창립 100주년 기념 프로젝션 매핑이 펼쳐진 모습. /위키피디아·LA필하모닉
그런데 우리가 발표할 때 사용하는 보통 휴대용 프로젝터의 영상을 생각해보세요. 평평한 스크린인데도 화면이 반듯하지 않게 나와서 별도의 조작을 통해 왜곡을 바로 잡아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DDP는 스크린 역할을 하는 외벽이 곡선으로 굴곡져 있습니다. 프로젝터가 쏘아주는 영상의 범위를 수학적으로 계산해 원하는 좌표와 형태에 맞춰 영상을 가공하는 작업이 필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션 매핑은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몇몇 선구자가 도전하는 실험 예술에 가까웠어요. 엄밀한 수학적 계산이 필요한 작업이다 보니 아무나 도전하기는 어려웠거든요. 그러다 21세기 들어 이런 계산을 해주는 전용 소프트웨어가 나오면서 널리 보급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3D 스캔 기술로 실제 건물 모양을 컴퓨터 안에서 쉽게 가상으로 구현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작업 수정과 진행, 그리고 리허설까지 가능해졌습니다. 또 영상을 쏘는 프로젝터도 이전보다 더 밝고 선명한 영상을 구현할 수 있게 개량됐습니다. 이런 기술 발전 덕에 프로젝션 매핑은 건축물을 대상으로 도심에서 시민들이 접할 수 있는 공공미술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어요.

대표적인 작업이 '서울 해몽'의 작가 아나돌이 미국 로스앤젤레스 월트디즈니콘서트홀(WDCH) 외벽에 연출한 'WDCH 드림스'입니다. 아나돌은 작년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오케스트라의 상주 공연장 WDCH에 프로젝션 매핑을 선보였어요. LA 필하모닉 관련 58만 장의 이미지, 1900개의 영상, 4만 시간에 달하는 오케스트라 음원을 모아 편집했습니다.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해 극단적인 굴곡이 반복되는 불규칙한 콘서트홀 외벽이 한치의 어긋남 없는 영상으로 꽉 채워졌어요.

프로젝션 매핑은 2016년 영국 브라이턴 페스티벌, 2017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에서도 활용됐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