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1899년 아시아 세번째로 도입… 70년 동안 도로 누볐죠

입력 : 2019.12.31 03:00

[서울의 전차]
대한제국 정부, 근대화 이루기위해 일본 교토·나고야 이어 세번째 설립
남녀·신분 차이 없이 평등하게 이용… 시·분 단위 정확한 시간관념 생겨
광복 후 많을 땐 한해 50만명 이용… 1968년, 늘어난 인구 감당못해 중단

최근 독일의 본에서 트램(tram) 운전사가 운행 도중 의식을 잃자, 승객들이 운전석 문을 부수고 들어가 차량을 무사히 멈추게 한 일이 있었어요. 유럽 도시에서 도로 위 레일을 전기의 힘으로 달리는 트램을 본 젊은 관광객들은 '우리나라는 왜 저런 걸 만들지 않았을까'라고 아쉬워하기도 해요. 만들지 않았다고요? 천만에요. 1899년부터 1968년까지 무려 70년 동안 서울 시민의 발 역할을 했던 교통수단이었어요. 바로 '전차(電車)'예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내년 3월 29일까지 여는 전차 운행 120주년 기념 '서울의 전차' 특별전에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차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전차, 근대의 문을 열다

"와 신기하네, 저게 전차라는 것이여?" "위에 있는 쇠줄에 작대기로 매달려 움직이는구먼." 서울에 처음으로 전차가 개통하던 1899년 5월 4일, 수많은 사람이 동대문(흥인지문)과 근처 한양도성 위에 올라서서 구경하는 사진이 있어요. 동대문에서 서대문(돈의문)까지 개통된 전차는 서울을 '근대 도시'로 탈바꿈시켰습니다.

[뉴스 속의 한국사] 1899년 아시아 세번째로 도입… 70년 동안 도로 누볐죠
/그림=김윤지
그런데 이날 전차를 본 서양인 중에서도 놀라는 표정을 지은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전차가 세계 최초로 실용화된 때는 1881년이니 서울의 전차는 세계에서도 무척 이른 시기에 놓인 셈이었죠. 아시아에선 일본 교토와 나고야에 이어 세 번째 전차였어요.

전차는 근대화를 이루려는 당시 대한제국 정부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나중에 미국 법인으로 경영이 넘어가긴 했지만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해 어떻게든 우리 힘으로 전차를 부설하려고 애썼다는 거예요. '고종실록'에는 "전차의 철로는 운반을 편리하고 빠르게 해 백성과 나라에 이익을 주려는 것"이라고 기록돼 있어요.

전차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점차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요금을 내기만 하면 남녀와 신분의 차이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같은 공간을 이용할 수 있었죠. 또 전차를 타기 위해 시(時)·분(分) 단위의 정확한 시간관념이 생겨나게 됐습니다. 밤 11시까지도 전차가 다녔기 때문에 사람들의 활동 시간도 늘어났어요. 전차와 함께 서울 시민들도 '근대인'으로 바뀌고 있었던 거예요.

200대 전차가 72개 역을 다녔지만…

1909년 일제가 전차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로 서울의 새 전차 노선은 일본인의 필요에 의해 놓이게 됩니다. 숭례문(남대문) 주변 성벽과 돈의문이 전차 노선 때문에 철거되는 비극도 일어났지요. 하지만 1943년까지 16개 전차 노선이 놓이면서 경성(서울)의 구석구석을 이었습니다. 생활권은 도심에서 교외로 확장될 수 있었죠. 학생과 직장인이 등하교·출퇴근을 하는 데도 전차는 꼭 필요한 수단이었어요. 1930년대엔 전차를 타려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30분 넘게 기다려야 겨우 탈 수 있었다고 해요.

광복 후에도 전차는 여전히 정겨운 '시민의 발'이었습니다. 많을 땐 한 해 5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전차를 이용했죠. 전성기였던 1950~1960년대에는 무려 72개 역에 200여 대 전차가 서울을 누볐어요. 은방울자매가 부른 1960년대 히트곡 '마포 종점'에 등장하는 '종점'이 바로 전차 종점이었지요.

하지만 1960년대가 채 지나기 전 작별의 순간이 찾아왔어요. 급속히 느는 서울 인구에 비해 전차는 속도가 너무나 느렸고, 오히려 교통 정체를 일으키는 애물단지가 돼 버렸던 거예요. 서울시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로 교통 정책을 전환하기로 하고 1968년 11월 29일 전차 운행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전차 중단 6년 뒤 지하철 개통… 1·2·5호선, 옛 전차노선과 비슷]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지고 6년 뒤인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지하철 시대'가 열립니다. 지하철은 전차를 계승해 새로운 '시민의 발'이 됐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새로 만든 지하철 노선이 예전의 전차 노선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옛 전차의 종로선(동대문~세종로) 자리에는 지하철 1호선이, 을지로선(동대문~을지로입구)과 왕십리선(을지로 6가~왕십리역)에는 지하철 2호선이 들어섰지요. 마포선(서대문~마포종점)은 지하철 5호선이 비슷한 노선으로 달리고 있습니다.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