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얼었네!'… 탄자니아 중학생이 발견

입력 : 2019.12.26 03:00

[음펨바 효과]
1963년 탄자니아 소년 '음펨바'가 아이스크림 만들던 중 발견한 현상
물리학 교수 도움 받아 세상에 알려

뜨거운 물에서 대류현상이 활발해 빨리 언다는 등 여러 가설 있지만 정확한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아

강과 호수가 얼어붙는 본격적인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물이 얼 때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진다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온도가 섭씨 40도인 물 한 컵과 20도인 물 한 컵을 영하 20도 냉동고에 넣으면 어느 쪽이 빨리 얼어붙을까요? 물이 어는점인 0도까지 당연히 20도 물이 더 빨리 도달하니 더 빨리 얼 것 같지요? 그런데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어는 현상'이 나타나고는 합니다.

탄자니아 중학생이 1963년 발견

1963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중학생 에라스토 음펨바(Mpemba)는 조리 수업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만들다가 이를 발견합니다. 따뜻한 우유와 설탕을 잘 섞어 만든 용액을 냉동실에 넣으면 아이스크림이 되는데요, 음펨바는 남들과 달리 식지 않은 혼합 용액을 그대로 냉동실에 넣었습니다.

음펨바는 얼마 후 냉동실 문을 열었어요. 그런데 충분히 혼합 용액을 식혀 냉동실에 넣은 다른 친구들 것보다 자기 아이스크림이 더 빨리 얼어 있는 걸 확인합니다. 상식을 깨는 일이 벌어진 거죠.

[재미있는 과학] '뜨거운 물이 더 빨리 얼었네!'… 탄자니아 중학생이 발견
/그래픽=안병현
음펨바는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선생님에게 물었죠. 하지만 선생님은 음펨바가 착각한 게 분명하다고 대답했고, 친구들 또한 그러한 현상에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음펨바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데니스 오즈번이라는 물리학 교수가 강의하러 왔어요. 음펨바는 중학생 때 실험한 내용을 오즈번 교수에게 설명했어요. 교수는 대학에 돌아가면 꼭 실험해 보겠다고 약속했지요.

오즈번 교수는 실험을 통해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언다'는 음펨바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합니다. 물론 펄펄 끓는 물이 얼음처럼 차가운 물보다 빨리 얼지는 않아요. 섭씨 35도 정도의 따뜻한 물과 5도 정도의 시원한 물, 43도의 물과 19도의 물을 비교해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온도를 제외한 나머지 조건은 같은 상태였고요. 오즈번 교수도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못했지만, 1969년 음펨바와 함께 이 연구 결과를 정리해 학술지 '물리교육(Physics Education)'에 발표합니다. 이후 이런 현상은 발견자 이름을 따서 '음펨바 효과'라고 부르게 됩니다.

왜 더 빨리 어는지는 해명 안 돼

그렇다면 음펨바 효과는 왜 일어날까요? 여러 가지 가설은 있지만, 아직 정확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어요. '뜨거운 물 분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증발이 더 잘 일어나기 때문'이란 주장이 나왔지만, 용기를 밀폐해서 증발 효과를 제거해도 음펨바 효과는 그대로 나타납니다. '한번 끓였던 뜨거운 물에는 녹아 있는 기체량이 적어서 빨리 언다'는 가설, '뜨거운 물은 차가운 물보다 대류 현상이 활발해 빨리 얼어붙는다'는 가설이 나왔지만 확실하지는 않았어요.

2012년 영국 왕립화학회는 상금 1000파운드(약 140만원)를 걸고 음펨바 효과를 설명할 과학 이론을 공모했는데요, 여기서 크로아티아의 니콜라 브레고비치 교수가 1위를 차지합니다. 그는 대류 현상과 함께 찬물 온도가 더운물보다 먼저 섭씨 0도 이하로 떨어지지만 물이 영하에서도 얼음으로 바뀌지 않고 액체로 남아 있는 과냉각(過冷却) 현상이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사이 더운물이 먼저 얼음이 된다는 겁니다. 브레고비치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직원이 된 음펨바에게서 직접 상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듬해인 2013년 새로운 가설이 또 나옵니다. 싱가포르 난양이공대 연구진은 물 분자의 공유결합(물 분자를 이루는 산소 원자와 수소 원자의 결합)과 수소결합(물 분자와 물 분자의 결합)의 특징 때문에 '더운물이 찬물보다 에너지를 더 빨리 내보내 음펨바 효과가 나타난다'고 발표합니다. 그렇지만 음펨바 효과 자체가 실험 오류 등에 따른 '착각'이라는 과학자도 많아 명확한 답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익숙한 물에도 아직 우리가 모르는 이런 신비가 남아있다니 놀랍습니다.


[데카르트도 발견했지만 잊혀… 음펨바에 의해 탐구대상 됐죠]

음펨바 효과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 효과'나 '데카르트 효과'라고 불릴 수도 있었습니다. 찬물보다 뜨거운 물이 빨리 어는 현상은 25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난제(難題)였던 것이죠.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얼기도 한다는 걸 발견합니다. 그는 어떤 성질이 주변의 성질과 반대일 때 그 성질이 더욱 강화된다는 소위 '반(反)주변성' 때문에 뜨거운 물이 차가운 물보다 더 빨리 언다고 해석했습니다. 바싹 마른 옷은 습한 곳에서 쉽게 축축해지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는 겁니다. 분석은 과학적이지 않았지만 냉동고도 없던 시절 이런 현상을 발견했다는 것이 대단합니다.

13세기 영국 철학자 로저 베이컨,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도 음펨바 효과를 확인했습니다. 그렇지만 적절한 설명을 내놓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수백 년간 잊혔던 이 현상은 음펨바에 의해 현대 물리학계의 탐구 대상이 됩니다.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