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스탈린 시대에 벌어진 '야만'… 수용소에서 보낸 11년 기록

입력 : 2019.12.25 03:00

수용소군도

오직 악한 일만 저지르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선과 악을 나누는 경계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수용소군도'는 11년 동안 소련 각지의 수용소(gulag)에서 경험한 내용을 기록한 자전 문학입니다.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스탈린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1945년 수용소에 갇힌 그는, 함께 생활했던 220여 명의 인물이 어떻게 수용소와 유형지로 끌려왔는지 기록함으로써 제정러시아와 소련의 폭정, 그리고 그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처벌 등을 고발하죠.

1930년대 러시아 보르쿠타에 있던 수용소 내부 모습입니다.
1930년대 러시아 보르쿠타에 있던 수용소 내부 모습입니다. 제정 러시아 시기부터 만들어진 '굴라크(gulag)'라고 불리는 수용소는 1930년대부터 스탈린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활용됩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소련에서 수용소는 '대숙청'이라 부르는 사건으로 급격히 늘어납니다. 1937년부터 1938년 사이 소련의 권력자 스탈린은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제거하는데, 최대 120만 명이 처형됩니다. 200만 명 가까운 사람이 수용소와 유형지에 갇혔고요. 죄도 없이 갇힌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당시 소련에는 크고 작은 수용소를 모두 합치면 최대 3만 개가 있었을 거라는 추정도 있어요. 수용소가 운영됐던 1918년부터 1950년대까지 최대 1800만 명이 수용소를 거쳐 갔다고 합니다. 제목을 '수용소군도'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수한 수용소가 군도(群島·무리를 이루고 있는 크고 작은 섬들)를 이루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죠.

수용소는 거친 세계였어요. 솔제니친도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또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수용소와는 관계없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렇다고 암울한 상황만 그려지는 것은 아니에요. 세상에서 분리시키려고 했던 정치범들이 한곳에서 모여 다시 항쟁을 꿈꾸는 대목도 등장한답니다. 아마도 솔제니친은 수용소가 절망의 공간이면서도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역설의 공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 것 같아요.

1953년 스탈린이 죽고 격하운동이 일어나면서 솔제니친도 풀려납니다. 솔제니친은 자신의 기억은 물론 수용소에서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를 되살려 거대한 기록 문학 '수용소군도'를 완성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아직 소련에 자유가 찾아오지는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솔제니친은 수용소 관련 글을 쓰고 있다는 걸 들키자 1973년 원고를 프랑스로 보내 출판했고, 1974년 소련을 떠나 1994년까지 20년 동안 망명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 역사와 진실의 전모를 한 사람의 글로 밝히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쨌든 바닷물은 한 모금만 마셔도 그 맛을 알게 마련'이라고 믿었어요. 덕분에 세상은 절대권력의 폭정을 기억하고 경계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 필로소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