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플라스틱으로 자연의 생생함 표현… 흐르는 물 닮은 병

입력 : 2019.12.18 03:00

티난트 생수병

티난트 생수병
/티난트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일반 생수 시장 규모는 1조3600억원에 달했습니다. 2014년(6040억원)에 비해 배 이상으로 성장했어요. 시중에 유통되는 생수만 250여종이 넘습니다.

그렇지만 물은 평범한 입으로는 맛 차이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브랜드 이미지'가 판매량을 좌우합니다. 전지현, 송혜교, 김연아 같은 유명인이 비싼 돈을 받고 생수 광고를 하며 상표를 알립니다. 또 물을 길어오는 수원(水源)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알프스(에비앙), 제주도(삼다수) 피지(피지워터)처럼요.

그런데 유명인 광고나 대단한 수원지 없이도 '생수를 담는 용기 디자인'으로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상표가 있습니다. 영국 웨일스의 생수 '티난트(Ty Nant·사진)'죠. 1989년부터 사업을 시작했으니 그리 오래된 편도 아닌데 생산량의 60%를 35국에 수출하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티난트의 고향은 영국 웨일스 지역의 캠브리안 산맥 근처 작은 마을입니다. 1989년 영국의 유서 깊은 사보이호텔에 납품하면서 이름을 알립니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기존 생수와는 달리 와인병처럼 우아한 볼륨감을 갖춘 코발트블루 색상 유리 용기는 고급스럽고 개성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페트병 생수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티난트는 고민에 빠졌어요. 지금까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승부를 겨뤘는데 페트병의 재료인 플라스틱은 저렴한 이미지가 강했으니까요. 그래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페트병을 만들기로 합니다.

기존 페트병 생수는 '물이 최대한 맑게 보이는 투명하고 단정한 용기에 커다란 브랜드 라벨을 붙인다'는 공식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2001년 처음 출시된 티난트의 페트병은 자유롭게 흐르던 물결을 순간적으로 멈추고서 그 모습을 그대로 따온 듯 표면이 울퉁불퉁합니다. 좌우가 비대칭적이라 역동감을 선사하고, 용기가 물과 하나가 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빛을 받으면 굴곡진 병에 담긴 물이 시냇물처럼 반짝였고요.

이 페트병을 디자인한 사람은 웨일스 출신의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61)입니다. 그는 인공적인 재료의 대표 주자인 플라스틱을 통해 자연의 생생함을 간직한 디자인을 만들어냈습니다. 티난트는 마치 현대미술 작품 같은 디자인을 훼손시키지 않으려고 브랜드 라벨은 최대한 작게 붙였답니다. 라벨이 없어도 용기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말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티난트는 기존에 성공했던 코발트색 병을 페트병으로 옮겨오는 안전한 선택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코카콜라의 유리병과 페트병이 기존의 굴곡진 인상을 공유하는 것처럼요. 그러나 티난트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고, 그 결과 디자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됩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