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대서양 첫 단독 횡단비행, 타임 '올해의 인물' 1호 선정

입력 : 2019.12.18 03:00

[찰스 린드버그]
25세에 선정돼 92년 동안 최연소… 올해 16세 툰베리 선정돼 기록 깨져

비행기로 항공 우편 배달하던 청년… 연료 더 싣기 위해 낙하산도 포기
물 1L, 샌드위치, 나침반만 싣고 33시간 동안 쉬지않고 6000㎞ 비행

찰스 린드버그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이 지난 11일 '올해의 인물(Person of the Year)'로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를 선정했습니다. 타임이 1927년 '올해의 인물' 선정을 시작한 이래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럼 그전까지 최연소 인물은 누구였을까요? 바로 타임이 1927년 최초로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 해에 '대서양 무착륙 단독 횡단'에 성공했던 미국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Lindbergh·1902~1974)입니다〈사진〉. 선정 당시 그는 25세였습니다.

"대서양 횡단한 사람에게 2만5000달러"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인 1919년 이런 공고가 뜹니다. 미국 부호 레이먼드 오티그의 제안이었습니다. "뉴욕부터 파리까지 무착륙 비행을 성공한 첫 사람에게 2만5000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지금 들으면 별로 힘들어 보이지 않는 도전이지만 당시 장거리 비행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어요. 약 6000㎞에 달하는 거리를 수십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비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도전자 르네 퐁크는 1차 대전에서 적기를 75대 격추한 프랑스 전쟁 영웅이었지만 침대까지 싣고 4명이 탑승했던 그의 비행기는 이륙조차 실패했습니다.

낙하산까지 포기하며 '가볍게 더 가볍게'

1927년 비행기로 미국 세인트루이스와 시카고를 오가며 항공 우편을 배달하던 20대 청년 린드버그가 도전장을 내밉니다. 그는 1925년 미 육군비행학교를 졸업한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돈이 없던 그는 세인트루이스 사업가들에게 1만5000달러를 지원받고, 비행기 이름을 '세인트루이스의 정신(Spirit of St. Louis)'이라고 붙입니다. 이후 그는 날개 14m, 동체 길이 8.4m인 단엽기(單葉機)를 개조합니다. 개조 방향은 '가볍게 더 가볍게'. 6000㎞에 달하는 거리를 날아가려면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 비행기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기름을 최대한 많이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도중에 착륙할 일 없이 오래 날기 위해서였죠.

5명이 탈 수 있는 비행기를 운전석 1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연료통을 넣을 공간으로 썼습니다. 린드버그는 방향을 잡을 때 필요한 육분의도 포기했어요. 라디오 수신기, 구조 신호용 조명탄, 낙하산도 싣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연료 탱크에는 기름이 1700L 들어갔습니다. 약 6600~7200㎞를 날 수 있는 연료를 확보한 겁니다.

홀로 33시간을 비행하다

린드버그는 1927년 5월 20일 아침 뉴욕 롱아일랜드에서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을 몰고 이륙합니다. 파리까지 거리는 5815㎞. 그는 물 1L가량, 샌드위치 몇 조각, 나침반, 선회계만 들고 떠났습니다.

1927년 처음으로 대서양을 '무수면' '단독'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가 그의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앞에 서 있습니다.
1927년 처음으로 대서양을 '무수면' '단독' 횡단한 찰스 린드버그가 그의 비행기 '세인트루이스의 정신' 앞에 서 있습니다. 그는 뉴욕에서 출발한 지 33시간 30분 만에 프랑스 파리에 도착합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대서양 위에서 그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틀 뒤 15만 인파 앞에서 파리 르부르제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합니다. 비행시간 33시간 30분 29.98초. 예비 파일럿도, 요즘 같은 자동화된 첨단 비행 기술의 도움도 없었습니다. 눈 한번 잘못 감으면 대서양으로 곤두박질할 상황을 정신력으로 이겨낸 것이죠.

그는 하루아침에 영웅이 됩니다. '뉴욕타임스'는 처음 5면을 린드버그의 횡단 성공 기사로 도배했습니다. 캘빈 쿨리지 당시 미국 대통령은 린드버그와 그의 비행기를 프랑스에서 수송해오기 위해 해군 순양함 멤피스호를 파견합니다. 6월 13일 뉴욕에서 벌어진 환영식에는 오색 색종이가 빌딩에서 꽃잎처럼 쏟아졌습니다. 당시 뉴욕시 청소국은 색종이 쓰레기 1800t을 수거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열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런 평가도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대서양을 날아서 건넌 것이 아니라 물 위를 걸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치 동조해 美 육군서 해임… 태평양전쟁 민간인으로 참전]

린드버그는 대서양 횡단 공적을 인정받아 미 육군 항공대 대령이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히틀러와 나치에 동조하는 반유대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의 기술력을 칭찬했고, 인종차별적 발언도 했습니다. 미국이 나치 독일과 싸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했고요. 이런 행보를 이어가다 미국 육군에서 쫓겨나기까지 합니다.

다만 그는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민간인 신분으로 태평양 전장(戰場)에서 전투기, 폭격기를 조종하며 50여 차례 임무를 수행했고, 이미지 회복에 성공합니다.



윤서원 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