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게을러서 자꾸 미룬다고?… 실패 두려워 시작 못하기도

입력 : 2019.12.13 03:00

[꾸물거림증]
'꾸물이'들 자신의 게으름 탓하지만 오히려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서 미뤄

빨리 끝날거라 믿어버리는 낙관주의, 누가 시킨 일은 하기 싫은 반항 기질
할일 너무 많은 것도 꾸물거림의 원인

어떤 일을 마감 기한까지 미루다가 직전에 정신없이 하느라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면서 이렇게 다짐하죠. 다시는 꾸물거리지 않겠다고. 하지만 다음번 시험 볼 때가 오면 또 밤샘 공부를 시작하고 있을 겁니다. 지금 속으로 '맞아 바로 내 얘기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증상을 '꾸물거림증(procrastination)'이라고 합니다. 꾸물거리는 이유는 꼭 게을러서가 아니라는 말을 오늘은 해 드리고 싶어요.

꾸물이의 여섯 유형

미국 임상심리학자 린다 서페이딘(Sapadin)은 꾸물거리는 사람들(이하 꾸물이)을 20년 이상 상담하면서 여섯 유형으로 정리했어요.

꾸물거림증
/그림=박다솜
첫째, '완벽주의자(perfectionist)'입니다. 일을 너무 잘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시작을 못 하고 계속 미룹니다. 둘째, '걱정이 많은 사람(worrier)'이에요. 잔걱정이 많고 실패를 두려워해서 일단 미룹니다. 셋째, '일을 과도하게 하는 사람(overdoer)'입니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요. 그래서 해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죠. 넷째, '몽상가(dreamer)'입니다. 비현실적 낙관주의자를 뜻합니다. 10시간 걸릴 일도 '두어 시간 하면 될 거야'라고 믿고 빈둥대다가 시간을 못 맞추기 일쑤입니다. 다섯째는 '반항아(defier)'입니다.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은 모두 잔소리로 여기고 하기 싫어 했고, 하기 싫어서 끝까지 꾸물댑니다. 여섯째는 '마감의 스릴을 즐기는 사람(crisis-maker)'이에요. 마감 시간이 임박해서 일할 때 오히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고 성과도 더 좋다고 믿는 감각추구형이지요. '거봐 남들이 10시간 걸리는 일도 난 3시간에 끝낼 수 있다니까'라는 자부심으로 삽니다. 그렇지만 일을 끝에 끝까지 미룬다는 건 똑같습니다. 서페이딘에 따르면 꾸물이는 위의 여섯 유형 중 몇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해요.

실수를 두려워하는 꾸물이들

세계 인구의 20%가 꾸물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그런데 꾸물이들은 왜 꾸물거릴까요. 대부분 꾸물이는 '내가 게을러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더 미루게 되는 겁니다. 완벽한 상황, 완벽한 계획, 완벽한 성공을 위해 처음에는 너무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다가도 막상 실수를 하고 나면 완벽한 모습에 금이 갔다고 느끼고 그러면 '에라 모르겠다'는 식으로 충동적으로 변한답니다.

이를 보여준 실험도 있죠. 2017년 폴란드 심리학자 미카왈로스키(Michalowski) 등 연구진은 꾸물이 대학생과 일반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봤어요. 청기 백기 올리기와 비슷한 단순 반복 과제를 하는데, 반응속도가 '보상(맞추면 돈을 줌)'이냐 '처벌(틀리면 돈을 내야 함)'이냐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본 겁니다. 보상 조건에서 꾸물이와 일반 대학생의 반응 속도는 비슷했어요. 그런데 처벌 조건이 되자 꾸물이는 답을 하는데 시간이 10% 가까이 더 걸렸어요. 꾸물이는 '실수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신중해졌던 거죠.

재밌는 건 처벌 조건에서 꾸물이들의 실수를 한 다음의 반응 속도입니다. 일반 대학생은 실수한 뒤에 반응 시간이 느려졌죠.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꾸물이는 실수를 한 번 해서 돈을 잃고 나면 반응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어요. '잘못을 만회해야 해'라는 생각에 충동적인 모습을 보였죠. 잘하고 싶으니까 잔걱정이 많아지고, 신경 쓰다 보니까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계속 생각만 하는 거죠. 사람은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평범한 존재입니다. 실수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는 것부터 바꿔나가는 건 어떨까요.


[계획은 그만! 작은 일부터 시작]

당신이 '꾸물이'라면 이렇게 해 보세요. 첫째, 생각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기보다 해야 할 일과 관련된 조그마한 행동부터 시작하세요. 시험 공부를 한다면 계획표를 근사하게 짜는 데 시간을 들이지 말고 교과서를 펼치고 처음 세 쪽을 큰 소리로 읽는 겁니다.

둘째, 하기 싫은 일을 시작할 때 자신만의 주문을 만들어보세요. '3, 2, 1, 시작!'같이요. 시작한다는 걸 강조하는 겁니다. 셋째, 계획을 세울 때는 1시간 단위로 세우지 말고 15분 단위로 세우세요. 작은 목표일수록 이루기가 쉽고, 덕분에 차근차근 달성할 가능성도 커요. 끝으로, 해야 할 일을 냉장고와 화장실 문 등 집 안 곳곳에 써 붙여 두세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