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고전이야기] '20세기 지성' 러셀이 쉽게 풀어낸 철학… 제목과 달리 널리 읽혔죠

입력 : 2019.12.11 03:05

인기 없는 에세이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성도 인정받았습니다. ‘인기 없는 에세이’에는 그의 철학과 유머가 담겨 있습니다.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성도 인정받았습니다. ‘인기 없는 에세이’에는 그의 철학과 유머가 담겨 있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철학은 한편으로 세계의 구조를 이론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최선의 인생관을 발견하고 설파하고자 한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은, 할아버지가 영국 총리를 두 차례나 지낸 명문가 출신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집안 배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현실 정치가 아닌 철학에 매진했어요. 러셀은 철학자이자 논리학자로 학문적 넓이와 깊이가 남달랐음에도 수학·과학·윤리학·역사 등 다른 학문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았어요. 그가 남긴 대표적인 책이 1950년 낸 '인기 없는 에세이'입니다.

'인기 없는'이라는 제목은 반어법입니다. 실제로도 러셀의 저작 중에서 가장 널리 읽힌 책으로 꼽힙니다. 러셀은 전작인 '인간의 지식' 서문에 "철학은 본래 지식층 일반의 관심사를 다룬다"고 썼어요. 철학이 대중적(popular)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비평가는 '책 내용이 어려운데 평범한 독자들도 읽을 수 있다며 독자를 속였다'고 비판했어요. 러셀은 이 책을 내면서는 서문에 "보기 드물게 멍청한 열 살배기 아이라면 좀 어렵게 느낄 만한 문장이 몇 군데 들어 있다"고 비평가들을 꼬집으면서, '대중적이지 않은(unpopular)', 즉 '인기 없는'이라는 수식어를 책 제목에 넣었다고 합니다. 러셀이 보여준 냉소적인 유머 감각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러셀은 '인기 없는 에세이'에서 쉬운 말로 철학이 어떻게 세상의 진보를 도와야 할지를 설명합니다. 특히 러셀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철학을 걱정합니다. 그는 "과학적 재능과 숙련된 기술이 하나가 되어 원자폭탄을 만들었지만, 그것을 만들고 나서 우리는 모두 공포에 빠졌고, 그것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한다"고 주장해요.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고 역설했습니다.

러셀은 철학의 바탕은 '지식'인데, 지식 없이 주의·주장을 내세우면 자신과 다른 의견은 배척하는 '어리석은 철학'을 하게 된다고 지적합니다. "이렇게 되면 인류는 서로 대립하는 광신도 집단으로 나뉘어 저마다 자신의 허튼소리를 신성한 진리로 굳게 믿는 반면 다른 집단의 진리는 가증스러운 이단으로 여기게 된다." 철학이나 종교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요? 우리도 생활하면서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이 책에는 러셀이 50대 중반에 미리 써놓은 자신의 '부고 기사(obituary)'도 실려 있어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돌아본 겁니다. "한평생 천방지축으로 살았지만 그 삶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식으로 일관성이 있었다." "사생활에서 그는 자신의 글에 가시처럼 돋은 신랄함을 전혀 보여 주지 않았다." 자기 삶에 확신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죠.

러셀에게 철학은 '삶을 살아가는 지혜'에 가까웠습니다. '인기 없는 에세이'는 러셀의 철학 세계를 탐구하는 좋은 시작점입니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 필로소퍼'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