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맨손으로 악어 잡으며 '마초맨' 행세… 푸틴 흉내내기

입력 : 2019.12.06 03:01

[람잔 카디로프 체첸 대통령]
고문·암살 자행하는 철권 통치자
이종격투기 관람하고 갑옷 입는 등 마초적 이미지 홍보에 열심이죠

푸틴도 한때 마초 행세 즐겼지만 이제는 성숙하고 점잖은 이미지 홍보
남성성 강조, 권력 유지에 도움 안돼

최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미주, 중동, 유럽 등지에 거주하는 재외 체첸인 500명은 체첸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체첸 사람들을 모욕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체첸은 러시아 연방에 속한 자치지역입니다. 난데없어 보이는 이 경고는 사실 '체첸의 마초(Macho·남자다움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남자) 독재자 람잔 카디로프(43) 체첸 공화국 대통령을 비난하지 마라'는 말을 돌려서 한 거였습니다. 카디로프는 고문, 정적 암살 등의 혐의 등을 받으며 인권침해를 자행한다는 비판이 거듭 제기되는 문제의 인물이거든요. 그렇지만 그는 뛰어난 홍보 전략으로 이를 무마해오고 있습니다. 흔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표적으로 마초성을 홍보하는 리더로 꼽히는데요, 카디로프는 이 방면에서 푸틴의 수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초 이미지를 적극 홍보한 선구자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마초 이미지를 적극 홍보한 선구자입니다. 2009년 웃통을 벗고 시베리아에서 말을 타는 모습(왼쪽)이 대표적이죠. 람잔 카디로프체첸 자치공화국은 푸틴을 흉내 내며 악어를 잡기도 하고(오른쪽 위) 중세시대 갑옷을 차려입고 공식 행사에 나타나기도 합니다(오른쪽 아래). /러시아대통령궁·인스타그램 캡처
그는 아버지 아흐마트 카디로프 전 체첸 대통령과 함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체첸 독립'을 주장하며 러시아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체첸은 이슬람교가 강세라 러시아 연방 소속이지만 독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왔던 지역입니다. 그렇지만 카디로프 부자(父子)는 2000년대 들어서 러시아 편에 섭니다. 람잔 카디로프는 2004년 분리주의 단체의 폭탄 테러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나서 더 노골적으로 러시아를 편들었고, 분리주의자들을 강경하게 진압했어요. 그렇게 푸틴의 눈에 들면서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2007년 서른한 살 나이에 대통령이 됩니다. 폐허가 됐던 체첸 수도 그로즈니는 어쨌든 카디로프가 권좌에 오른 뒤 마치 두바이처럼 화려하게 발전하고 있어요. '러시아의 개'라는 악명도 높아졌지만요.

권좌에 오른 카디로프는 푸틴처럼 '마초'라고 홍보하는 전략을 즐겨 썼습니다. 10대 때 이미 전장에 섰고, 20대에 아버지를 테러리스트 손에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가혹하고 폭력적인 상황을 이겨낸 강한 남자라고 호소합니다.

그는 군복을 입고 자신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인 5000명 규모의 체첸 민병대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즐겨 보여줍니다. 턱수염을 텁수룩하게 기르고, 풍채도 좋아 남성적인 이미지를 강조합니다. 또 이종격투기 대회 MMA를 관람하며 체첸 선수를 열광적으로 응원하기도 하죠. 게다가 총기광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일종의 '사고'를 칩니다. 그는 지난 2017년에는 '여성의 날' 행사에 참석하면서 중세시대 기사가 입었을 법한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고, 기다란 창을 들고 입장했습니다. 2015년에는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 야생 악어를 맨손으로 제압하는 영상과 사진을 올리기도 했죠. 이 정도면 마초 중의 마초라 할 만하죠. 그리고 왜 푸틴의 수제자인지도요.

카디로프의 멘토 푸틴은 한겨울에 웃통을 벗어 젖히고 말을 탔고,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강을 헤엄쳤고, 시베리아 숲속 호랑이를 마취총으로 쏴 제압했다고 열심히 홍보했습니다.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흑해 아래 가라앉은 고대 도자기를 건져 올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극단적인 홍보 전략도 정치의 일부분입니다. 친근한 이미지를 주고 싶은 정치인은 지난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처럼 어린이 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카디로프는 정반대로 강인한 이미지를 주는 홍보 전략을 택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런 마초 이미지를 강조하는 전략은 적절한 걸까요? 일상적인 시민 사회에서도,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마초적인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흔히 마초를 보면 '대체 왜 저러는 거야?'라고 흘겨보죠. 국가 지도자가 보여주는 마초 같은 모습 역시 곱게 보지 않는 일반 사람들이 많습니다. 솔직히 전쟁이 벌어진다고 카디로프와 푸틴이 실제로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갈 가능성은 아주 낮죠. 또 나라를 통치하면서 격투기 실력을 자랑할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렇게 힘을 뽐내야 할 사람들은 실제로 무력을 써야 하는 군인과 경찰이겠지요. 굳이 국가 지도자가 힘자랑을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카디로프는 푸틴의 홍보 전략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연구해봐야 할 겁니다. 푸틴은 이제 예전처럼 힘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성숙하고 점잖은, 정치인다운 이미지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웃통을 벗고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지도 않고요. 지도자가 '터프 가이'라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많지 않습니다.


앤드루 새먼 동아시아 타임스 동북아 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