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영하 196도로 송전케이블 유지해 전력손실 전혀 없죠

입력 : 2019.12.05 03:05

[초(超)전도 전력케이블]

영하196도 액체질소 넣어 온도 낮춰 송전 중 열로 손실되는 전기 없앴죠
최근 우리나라 LS전선이 최초 상용화
기존보다 전기 5~10배 많이 보내 송전선·변압기 적게 설치할 수 있죠

LS전선이 한국전력공사와 함께 지난달 5일 세계에서 처음으로 초(超)전도 전력케이블을 상용화했어요. 초전도는 영하 200도 수준의 아주 낮은 온도에서 전기저항이 없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를 응용해 전력 손실을 '제로(0)'로 줄인 송전선을 개발한 겁니다. LS전선은 경기도 용인시 흥덕 변전소와 신갈 변전소 사이 1㎞ 구간에 초전도 케이블을 설치하고 운용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초전도 케이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LS전선을 포함해 미국, 일본 등의 다섯 개 기업뿐입니다. 우리나라는 네 번째로 초전도 기술을 개발했는데, 가장 먼저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죠.

집에 전기가 들어오기까지

초전도 전력케이블이 왜 중요한지 이해하려면, 전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오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발전소는 생산한 전기를 20만~80만 V(볼트)의 초고압으로 바꿔 초고압선을 통해 각 지역의 변전소로 보냅니다. 변전소는 받은 전기의 전압을 2만 V 정도로 대폭 낮춰 가정, 사무실, 공장 등에 보내죠. 그리고 가정 근처에 달린 변압기가 다시 전압을 220V로 낮춘 전기를 우리가 씁니다.
초전도 전력케이블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그런데 이렇게 전기가 전선을 따라 흘러오는 과정에서 전기가 손실됩니다. 전선은 작기는 해도 전기저항을 갖고 있거든요. 현재 쓰는 구리 케이블은 저항이 아주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가정에 오기까지 전기의 2~4%가 저항으로 발생한 열 때문에 사라진다고 합니다.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낼 때 초고압으로 바꾸는 이유는 뭘까요. 전선을 통과할 때의 전기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양의 전기라도 초고압이 되면 에너지 손실이 줄어들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초전도 전력케이블입니다. 전기저항이 없는 초전도체 전선을 쓰면 이동 중에 전선의 전기저항으로 잃는 전력이 없어지겠죠.

낮은 온도서 전기저항 사라지는 원리 활용

초전도 전력케이블은 1911년 네덜란드 물리학자 카메를링 오너스(1853~1926)가 발견한 '초전도 현상'을 응용한 발명입니다. 초전도 현상이란 특정한 온도에서 물체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당시 오너스는 온도를 낮추면서 수은의 전기저항을 측정해봤는데, 영하 269도가 되자 수은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이렇게 저항이 없어지는 온도를 '임계온도'라고 합니다.

LS전선은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로 전력케이블을 차갑게 해 극저온을 유지하는 전선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한 번 액체질소를 충전하면 전력케이블을 바꿀 때까지 추가로 액체질소를 주입하지 않아도 되는 냉각 기술을 개발했지요. 변전소와 변전소를 잇는 전력케이블을 냉동고로 감싸 늘 차갑게 유지하고 있다고 상상하면 됩니다. 송전 중 열로 손실되는 전기가 사라져 전기 생산 비용이 줄어들겠죠.

굵기 같으면 구리보다 전기 5~10배 보내

이번에 상용화된 초전도 케이블을 쓰면 구리 케이블보다 낮은 전압으로도 5~10배의 많은 전기를 보낼 수 있어요. 저항이 사라지기 때문에 굳이 전기를 효율적으로 보내겠다며 초고압으로 만들 필요가 없어지거든요. 그 결과 변압기도 지금처럼 많이 설치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 경우 변전소 크기가 지금의 10분의 1이면 충분할 거라는 예상도 있어요.

한국은 도시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요. 그에 따라 전력 수요도 늘어나 도심의 전력 케이블이 계속 추가되고 있어요. 그러면서 도심의 지하 공간은 거의 한계에 이르렀죠. 이제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초전도 케이블이 힘을 발휘합니다. 초전도 전력케이블은 기존의 구리 케이블과 같은 굵기일 때 보낼 수 있는 전기 용량이 5~10배에 달합니다. 초전도 전력케이블 1가닥이 구리 케이블 10가닥을 대체하는 셈이죠. 설치 공간을 줄일 수 있어 도심 전력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하 196도가 상대적으로 고온?]

초전도 전력케이블을 만들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임계온도입니다. 현존하는 모든 초전도체는 아주 낮은 온도에서만 초전도 현상을 보이기 때문이죠. 1986년까지만 해도 영하 240도 아래에서만 초전도 현상이 일어난다고 학자들은 믿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듬해부터 이보다 높은 온도에서도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물질들이 발견됩니다.

최근 초전도 전력케이블 개발에 사용되는 물질은 '고온 초전도체'라고 부릅니다. 영하 196도, 즉 상대적으로 '고온'에서 초전도체가 돼 이런 이름이 붙었죠. 고온 초전도체가 주목받는 이유는 싼값에 만들 수 있는 액체질소를 냉매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질소는 공기 중에 풍부해서 쉽게 구할 수 있어요. 유출돼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물질이라는 장점도 있고요.

반면 '저온 초전도체'는 영하 240도 아래로 온도를 내려야 하는데 대부분 영하 269도의 액체 헬륨을 씁니다. 그런데 헬륨은 지구에서 너무 희귀한 물질이라 가격이 아주 비쌉니다. 헬륨을 쓰면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뜻이죠.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