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겉면에 두른 유리, 네모난 모양…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시작

입력 : 2019.12.04 03:00

현대 마천루

지난 26일 서울시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신사옥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축을 허가했습니다. 설계대로라면 569m 높이로 국내 최고층 건물 역사를 다시 쓸 건물입니다. 현재 최고층 건물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555m)보다 14m 더 높거든요. 이렇게 높은 건물을 흔히 '마천루'라고 하는데요. 현대 사회에서 마천루의 이미지란 네모반듯한 형태로 높게 솟아 있고, 건물 전체가 유리로 둘린 모습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마천루였던 여의도 63빌딩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죠. 그런데 이런 전형적인 마천루의 형태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답니다. 1958년 완공된 뉴욕 '시그램 빌딩'을 그 원형으로 꼽거든요.

현대 마천루의 원형으로 꼽히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뉴욕 시그램 빌딩(왼쪽). 그의 제자 김종성이 설계한 서울 서린동 SK 사옥.
현대 마천루의 원형으로 꼽히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뉴욕 시그램 빌딩(왼쪽). 그의 제자 김종성이 설계한 서울 서린동 SK 사옥. /위키피디아·서울건축
시그램 빌딩을 설계한 독일 출신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는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더불어 근대 건축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을 지낸 바 있는 그는 나치 독일을 피해 1937년 미국으로 망명했고, 터전을 잡은 시카고에서 현대 도시를 바꾸는 혁신적인 건축물을 짓기 시작합니다. 강철로 된 철골 구조와 유리를 이용해서 말이죠. 흔히 그의 건축은 모더니즘의 정수라 불립니다. '더 적을수록 더 많다(Less is more)'라고 요약되는 유명한 어구가 그의 건물을 설명하죠. 기존 건축에서 장식적인 요소는 과감하게 제거하고 아주 간결하면서 실용적인 건물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더니즘 마천루는 국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인 건축가 김종성(84)은 건축의 기본과 본질을 중시하는 스승의 건축 철학을 소화해 단순한 형태, 절제된 비례, 섬세한 디테일을 구사하며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건축의 표준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예가 1999년 완공된 서린동 SK 사옥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직선으로 구성한 160m 높이의 사무용 건물인데요. 언뜻 보면 심심해 보이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낭비되는 공간이 없고 창문 크기와 배열의 비례가 안정적이라 지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클래식한 기품을 지닙니다. 1983년 남산 기슭에 완공된 밀레니엄 힐튼 서울 역시 김종성의 모더니즘 건축을 한껏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밀도 높게 지어진 외형에 반듯한 창문이 섬세하게 놓여진 모습에서 건축평론가들은 전 세계 힐튼 호텔 중 수작이라는 평을 남겼습니다.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시작한 마천루 스타일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면서 '도시 풍경을 획일화하며 모든 도시를 똑같이 보이게 했다'며 비판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모더니즘에 입각한 초고층 건물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보편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증거이기도 하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