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밌다, 이 책!] 닦아도 다시 뽀얀 먼지 앉는 방처럼 마음도 종종 닦고 툭툭 털어줘야해요

입력 : 2019.12.03 03:00
'먼지아이'
먼지아이|정유미 글·그림|컬쳐플랫폼|228쪽|2만9000원

화려한 색깔의 그림으로 채워지는 보통의 그림책과 달리, '먼지아이'는 연필로 그린 흑백 세밀화로 구성돼 있습니다.

잠들지 못한 어느 겨울 밤, 주인공 유진은 미뤄두었던 방 청소를 시작해요. 유진은 침대 위에서 조그만 먼지를 발견해요. 재미있게도 사람 아이처럼 생긴 '먼지아이'입니다. 그래도 먼지니까 치워야 했죠. 유진은 청소를 하는 동안 방 안 곳곳에서 다른 먼지아이를 만나게 됩니다. 화장대에, 옷장에, 성냥갑 위에, 먼지아이는 어디에나 있어요. 유진은 그때마다 먼지아이를 치우지만, 그 사이 다른 곳에 생겨 내려앉기도 합니다. 먼지니까, 사실 방 안에서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존재겠죠.

먼지아이는 유진이와 꼭 닮았어요. 주인공과 닮아서일까요? 어쩌면 먼지아이는 주인공 유진의 마음을 나타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먼지아이가 곧 주인공의 내면'이라고 생각하면, 이 이야기는 새롭게 읽힙니다. 깨끗이 닦아 낸 후에도 얼마 후면 다시 뽀얗게 쌓이는 먼지처럼, 우리는 종종 자신도 모르게 근심에 빠져들곤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우린 그 걱정들을 툭툭 털어내고 다시 힘을 내야 하지요. '먼지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대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는 책인지도 몰라요. 글자 없이 그림으로만 표현하지만, 글자로 가득 찬 책보다 더 깊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림책입니다.

'먼지아이'
/컬쳐플랫폼
그림책 '먼지아이'는 원래 애니메이션 감독인 정유미 작가가 5000장이 넘는 그림을 그려 만든 10분 분량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였어요. 이후 정유미 감독은 애니메이션에 쓰였던 그림을 추려 책으로 펴낸 것이죠. 영화와 책은 각각 영화계와 출판계에서 모두 인정받습니다. 단편 영화 '먼지아이'는 2009년 칸 영화제에 초청받는 등 세계 70개 이상의 영화제에서 상영됐지요. 박찬욱 영화감독이 자신의 영화 '박쥐' DVD에 수록하며 극찬했어요. 책은 2014년 세계 최고 권위의 아동문학상인 라가치상(뉴허라이즌 부문) 대상을 받았고요.


김성신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