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유겸의 스포츠로 세상 읽기] 스타선수 사오지 않고 직접 길렀다… 두산 우승의 비결

입력 : 2019.12.03 03:00

화수분 야구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 베어스가 올해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화수분은 그 안에 물건을 담아 두면 끝없이 늘어나 계속 꺼내도 내용물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전설의 단지입니다. '화수분 야구'는 2군에서 팀 주전으로 발돋움하는 선수가 계속해서 나오는 걸 뜻합니다. 우수한 선수는 다른 팀에서 자유계약으로 데려오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2군에서 뛰어난 선수가 마르지 않고 나오면 선수를 외부에서 큰돈을 들여 영입해올 필요가 없겠죠.

지난 10월 두산 베어스의 포수 박세혁(오른쪽)과 투수 배영수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두산 베어스의 포수 박세혁(오른쪽)과 투수 배영수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축하하고 있습니다. 2012년 데뷔 이래 2군과 후보에 머물렀던 박세혁은 첫 주전 포수가 된 올해 두산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연합뉴스
두산은 화수분 야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꼽힙니다. 올해 두산은 지난 시즌 핵심 전력으로 꼽히던 포수 양의지(32)가 NC다이노스로 이적하면서 전력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그렇지만 이 자리를 2012년 두산에 입단해 2016년까지 주로 2군에서 뛰던 박세혁(29)이 훌륭하게 채웠습니다. 이영하, 김인태, 최원준 등 2군에서 잘 자라난 유망주들도 팀 우승에 한몫 단단히 했습니다. 두산의 성공은 2군을 통한 유망주 육성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미 프로야구(MLB) 메이저리그에서는 마이너리그를 '팜(farm·농장)'이라고 부릅니다. 메이저리거 대부분이 마이너리그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무럭무럭 자라 나오기 때문에 쓰는 비유죠. 메이저리그 단장들이 취임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강조하는 목표가 비옥한 팜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구단 내부에서 어린 선수를 잘 훈련해 1군 주전, 나아가 스타 선수로 키워내는 것이 투자 대비 성과도 높고, 꾸준하게 우수 선수를 확보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MLB 사무국은 2015년부터 매년 각 팀의 팜 시스템을 평가하고 있는데요. 이 평가에서 순위가 높았던 팀들이 우승하는 경향도 있어요. 2016년 우승한 시카고 커브스는 2015년 평가에서 1위를 했습니다. 2018년 우승한 보스턴 레드삭스는 2016년 1위를 했죠. 팜 시스템이 튼튼할수록 우승권 전력을 만들기 쉽다는 뜻입니다.

'화수분'식 내부 인재 육성 시스템이 중요한 것은 스포츠뿐만이 아닙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2014년 '실적 좋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100명 중 90명 이상이 내부 승진 인재였다'고 분석했습니다. 외부에서 유능한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회사 내부 인재를 키우고 승진시키면 조직 구성원들 사기가 높아지고, 맡은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내부에서 성장한 리더는 조직이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도 이직 제의에 응하지 않고 조직에 계속 충성할 가능성도 외부 영입 인사보다 크게 높습니다. IBM, UPS(물류업체), 제록스 등은 내부 인재 육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 기업들이죠.

두산은 화수분 야구로 우승까지 차지했습니다. '화수분' 전략은 스포츠뿐 아니라 경영 분야에도 적용 가능합니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