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불황에 허덕이던 빌바오, '세상에 없던 건물' 지어 문화도시로 재탄생

입력 : 2019.11.26 03:00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지난달 루이비통의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 '루이비통 메종 서울'이 서울 청담동에 문을 열었습니다. 자유분방하게 굽은 유리판이 햇빛에 시시각각 반응하며 차곡차곡 쌓이고 확장하는 모양새가 인상적인 이 건물은 프랭크 게리(90)가 설계했습니다. 1989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 건축상을 받은 게리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소재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지금까지 체코 프라하 댄싱 하우스, 미국 LA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등 수많은 명물을 디자인한 스타 건축가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작업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빌바오 효과'라는 말까지 생겼거든요.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역동적인 건물 디자인과 티타늄 패널 수만 장을 이어 붙인 외관이 특징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빌바오 효과'는 랜드마크 건축물이 돈을 벌고 경제를 살려 도시를 부흥시키는 현상을 말합니다. 스페인 빌바오시(市)는 철강·조선 산업이 불황을 겪으면서 1980년대 들어 실업률이 25%에 달할 정도로 쇠락했어요.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은 도시를 떠났고, 방치됐던 산업시설에서 오염물질이 흘러나와 도시를 가로지르는 네르비온강을 오염시켰죠. 빌바오의 미래는 누가 봐도 부정적이었어요.

이런 상황에서 시 당국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을 유치하기로 결정합니다. 미술관 건립에 들어갈 세금이 아까웠던 주민 95%가 반대했죠. 그렇지만 시는 프로젝트를 강행했고, 국제 공모를 통해 게리를 총괄 건축가로 선정합니다. 그는 마치 물고기들이 서로 뒤엉킨 듯한 역동적인 외형의 미술관을 설계했어요. 항공기 외장재로 쓰던 티타늄 패널 수만 장을 이어붙인 건물 외관이 은빛 비늘처럼 반짝이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1997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문을 열자마자 '세상에 없던 건물'이라는 평을 들으며 각지에서 방문객이 찾아왔죠. 미술관 짓는 데 1800억원을 쏟았는데 3년 만에 건축비를 모두 회수했다고 합니다. 빌바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문화도시'로 자리매김했고요.

물론 스펙터클하고 독특한 볼거리가 되는 미술관 한 채 덕분에 쇠락하던 도시가 기사회생한 것은 아닙니다. 빌바오는 미술관 개관 6년 전인 1991년부터 '빌바오 메트로폴리-30'이라는 도시재생계획을 추진했어요. 공공, 민간 부문이 힘을 합쳐 난개발을 방지하고 총체적 관점에서 도시를 다시 살려냈죠. 또 도시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지하철이 들어섰죠. 네르비온강의 수질도 개선했고, 강 주변 도보 등도 재정비했습니다. 이런 노력을 알고 나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 재생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였지 그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그럼에도 빌바오를 다녀온 사람들, 가보고 싶은 사람들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게리가 지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입니다. 빌바오가 오랜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데 결정적인 한 방이 된 이 건물은 건축의 무한한 잠재력을 다시 느끼게 합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