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보이저호, 외계인 만나면 바흐·베토벤 들려준다
[우주로 간 클래식]
1977년 발사돼 태양계 밖 여행 중인 보이저 1·2호에 '골든 레코드' 실려
자연 사진, 천둥소리, 인사말 등과 바로크 시대 대표하는 바흐 음악 3곡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 베토벤의 '운명' '카바티나'도 담겨
12인치 구리 레코드 판에 금박을 입힌 골든 레코드에는 혹시라도 보이저호가 마주칠지 모르는 외계 지적 생명체에 우리 지구를 소개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지구의 자연과 인간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과 아기 울음소리, 로켓 발사음, 바람과 천둥소리,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등 음성 자료가 들어 있어요. 아울러 골든 레코드에는 지구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도 다양하게 실려 있는데요, 유럽에서 시작돼 몇 백 년 동안이나 그 인기가 식지 않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대표적 명곡도 여럿 들어 있습니다.
골든 레코드에 실려 있는 클래식 작품의 작곡가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단연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바흐는 우리에게 '음악의 아버지'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활동 당시 유럽 음악의 거의 모든 요소를 작품을 통해 결합시키고 그 미래상을 보여줬기에 작곡가들의 대표 격으로 보이저호에 실릴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됩니다.
바흐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미지의 존재들을 위해 선택된 곡은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중 1악장,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중 가보트,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2권 중 1번 C장조 등 3곡입니다.
브란덴부르크 공작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여섯 곡은 그 독특한 악기 편성과 창의적 악상으로 바로크 시대 협주곡을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그중 협주곡 2번은 독주를 맡은 트럼펫 소리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독주 바이올린의 낭랑하면서도 경쾌한 음색이 인상적인 가보트는 두 박자 계열의 보통 빠르기로 되어 있는 춤곡인데 바로크 시대 프랑스에서 유행했습니다. 바흐의 악상은 명랑하고 청명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요.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사라져도 이 모음곡만 있으면 모두 재조립할 수 있다'는 최고 평가를 받는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은 당시 새롭게 등장한 조율 방식인 '평균율'을 실험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연습곡(프렐류드와 푸가로 구성)입니다. 총 48곡을 2권에 나눠 담았는데요, 2권은 그의 말년인 1744년경 완성됐죠. 1권보다 약 20년 후에 만들어진 만큼 더 원숙한 작품 특성을 담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서두를 장식하는 2권의 1번은 웅대하고 규모가 큰 악상이 두드러집니다. 작품들을 연주한 음악가들은 지휘자 카를 리히터,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튀르 그뤼미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바흐의 전문가들입니다.
인류 최고 음악 천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는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 '지옥의 복수심이 내 마음 속에 끓어오르고'가 실렸습니다. 자라스트로에게 딸 파미나를 빼앗긴 밤의 여왕의 분노가 노래 전체에서 느껴지는 극적인 이 아리아는 특히 후렴 부분 고음이 유명하죠. 인간의 음성이 낼 수 있는 특징적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선택되었다고도 생각됩니다. 보이저호에는 독일인 소프라노 에다 모저가 부른 아리아가 수록돼 있어요.
위대한 악성 베토벤의 작품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표작인 교향곡 5번 '운명'의 1악장과 현악 4중주 13번 중 5악장 '카바티나'가 선택되었죠. 특히 현악 4중주곡 '카바티나'는 말년을 맞은 베토벤의 솔직 담백한 자기 고백과 같은 곡인데요,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느낀 회한이 담겨 있는 걸작이죠. 그 차분하면서도 초월적인 분위기가 우주의 고요함과 잘 어울릴 듯합니다. 이 곡은 부다페스트 4중주단의 녹음으로 실렸습니다.
골든 레코드는 드넓은 우주에 인류가 존재했었다는 것을 기록한 일종의 '타임캡슐'이기도 합니다. 현재 보이저 1호는 태양에서 약 220억㎞, 보이저 2호는 182억㎞ 떨어진 곳을 항해하고 있어요. 보이저호는 지금도 머나먼 우주로 골든 레코드를 실어 나르고 있습니다. 골든 레코드에 수록된 클래식곡들은 이미 널리 알려진 것들이지만 밤하늘 저 먼 곳을 바라보며 들으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 같아요.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카라얀이 지휘한 클래식 나와]
우주여행이나 탐사를 다룬 영화에서도 클래식 음악이 자주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작품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죠. 목성으로 향하는 탐사선의 모험을 통해 인류의 기원과 시간의 개념을 설명하고자 한 이 작품에는 곳곳에 클래식 음악이 쓰였어요.
오프닝과 엔딩 장면에서 나온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 부분은 이 영화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주 정거장과의 랑데부 장면, 달 착륙 장면 등에 삽입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절묘하게 어울렸죠. 영화에 들어간 두 곡은 모두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지휘한 버전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