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현재의 5배 요구하는 트럼프… 흔들리는 66년 동맹

입력 : 2019.11.22 03:09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

한국, 올해 10억 달러 방위비 부담… 트럼프 "부자 나라, 분담금 더 내라"
일본에도 방위비 4배 인상 요구
"한·일 머리 맞대어 분담금 대응하면 트럼프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현재의 5배인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로 올리자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미국은 19일 애초 7시간으로 예정됐던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80여분 만에 한국 측 제안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중단했습니다. 방위비를 더 부담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부자 나라는 더 많은 방위비를 내야한다"고 말했어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을 무기로 삼았습니다. 관세를 왕창 높이는 등의 방식으로 중국을 압박해온 것이 대표적이죠. 여기에 한국 등 동맹국을 상대로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본격적으로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한국은 1991년 1억5000만달러를 부담하기 시작해, 올해는 약 10억달러를 내고 있습니다. 28년 동안 6배가량 올랐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년 만에 5배를 더 올리겠다고 나섰죠. 미국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동맹국이 없는 한국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상황입니다.

한·미 동맹에 의지하는 한국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이래 한국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혜택을 누렸습니다.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며 북한 등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줬습니다. 한국이 미국과 동맹을 맺으며 아낀 국방비는 수십억 달러 이상일 겁니다.

또 한·미 동맹으로 한국은 군사적 혜택 이상을 얻어왔습니다. 분단국가인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한국 국가 신용등급이 올라갑니다. 미군이 철수하면 한국의 신용등급은 추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한국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지금보다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겠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백악관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군 주둔비로 올해 부담한 돈보다 5배 많은 5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9일 백악관 내각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어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군 주둔비로 올해 부담한 돈보다 5배 많은 5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요. /AP 연합뉴스

미군이 철수하면 외국인 투자도 현재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큽니다. 북한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에서 외국 기업이 한국에 투자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 안전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니까요.

한국 정부가 방위비 분담금을 단지 군사적인 것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미군 주둔으로 인한 혜택까지 계산해 적절한 방위비 분담금액 기준을 정하고 협상에 나서야 할 겁니다. 이는 한국 경제를 좌우할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미국의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

물론 한·미 동맹이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퍼주는' 관계는 아닙니다. 미국도 한국을 통해 이득을 얻고 있거든요. 한국은 태평양 최전방에 있는 미국의 '절대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나 마찬가지거든요.

점차 예측이 어려워지는 동북아 국제정세는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더 키우고 있어요.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을 키우며 미국의 경쟁 상대로 떠오르고 있고, 러시아는 냉전 이후 다시 서방과 경쟁할 채비를 하고 있어요. 북한은 사실상 핵 보유국이 돼 미국의 골칫거리가 됐죠.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중국, 러시아, 북한의 동향을 파악하고 통제하기에 최적의 위치에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괌, 하와이와 달리 동북아 한복판에서 미국이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땅이니까요.

한국은 미국의 혈맹이기도 합니다. 평화로운 시절에 동맹을 맺고 그걸 유지해온 국가가 아니라는 겁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참전한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이었습니다. 한국은 두 전투에서 미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함께 피를 흘렸죠. 베트남전에서는 미군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투입한 나라가 한국이었습니다. 한국군은 2000년대 들어서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작전에 합류했습니다. 중국의 경제 보복에 시달리면서도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도입했고요. 한국이 계속해서 미국과 보조를 맞춰온 동맹국이라는 점은 고립주의를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미국 대중도 잘 알아야 할 내용입니다.

미군 없는 동북아의 미래?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도 더 큰 방위비 분담금을 내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일본도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기존의 4배에 가까운 80억달러로 올려달라는 요청을 받았거든요.

영국인인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과 일본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합쳐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요구에 함께 대응하면 협상력이 더 강해질 거라는 거죠. 두 동맹국이 한목소리를 내면 미국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의 외교관계는 1965년 수교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긴장된 상황입니다.

오는 23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임박한 상황에서 좀 무리한 상상일 수도 있지만, 이런 가정도 해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한국과 일본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면, 한국과 일본은 오래 이어져 온 과거사 문제를 극복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겁니다. 미군이 없는 동북아라는 새로운 안보 조건이 갖춰진다면 마침내 한·일 양국이 실용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 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