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소음으로 소음 지우는 기술… 이어폰·자동차 등에 쓰여

입력 : 2019.11.21 03:00

[노이즈 캔슬링(noise-cancelling)]
소리는 공기 중에 퍼지는 파동이죠
먼저 주변 소음의 파동을 분석한 후 반대 파동 내보내 소음 상쇄시켜요

생활 속 외부 소음 줄여줘 쾌적하고 작은 음량으로도 음악 감상 가능

지하철이나 비행기에서는 소음이 크다 보니 절로 평소보다 이어폰 음량을 높이게 됩니다. 그런데 주변 소음을 줄여주는 기능이 있다면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음량을 높이지 않고도 영상이나 음악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겠지요? 이를 위해 탄생한 기술이 '노이즈 캔슬링(noise-cancelling)'입니다.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active noise control·ANC)이라고도 부릅니다. 최근 애플이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탑재한 이어폰을 새로 내놓으면서 화제입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어떤 방법으로 소음을 줄이는 걸까요?

소리는 '진동'

일상생활에서 소리는 공기의 진동을 통해 들립니다. 소리가 나는 음원에서 파동이 발생하면 공기를 통해 그 진동이 전달돼 귀로 들어오는 것이지요. 진동은 귓바퀴와 귓구멍 안쪽 통로인 외이도, 고막, 귓속뼈를 차례로 거쳐 달팽이관에 다다릅니다. 깔때기 형태의 귓바퀴는 소리를 외이도로 모으는 역할을 하고, 고막은 얇은 막으로 되어 있어서 외이도를 지나온 소리 때문에 진동하게 돼요. 고막의 진동은 귓속뼈로 전달됩니다. 귓속뼈는 고막에서 전달받은 진동을 증폭시켜서 달팽이관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지요. 달팽이관 속 청각 세포는 이 진동을 감지해 뇌로 전달합니다. '귀로 소리를 듣는다'고 말할 때 실은 이런 과정이 벌어지는 겁니다.

[재미있는 과학] 소음으로 소음 지우는 기술… 이어폰·자동차 등에 쓰여
/그래픽=안병현
소리는 에너지를 전달하는 진동입니다. 이 에너지가 공기나 물 따위를 통해 퍼져 나가는 것을 파동이라고 합니다. 음파는 '소리의 파동'을 뜻합니다.

음파의 보강과 상쇄

길을 걷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 자동차 소리, 바람 소리 등 여러 소리가 동시에 들려옵니다. 각각의 음파를 귀가 받아들이는 것이죠.

호수에 크고 작은 조약돌 여러 개를 던지면 각각의 돌이 일으킨 잔물결이 겹쳐지는 걸 보셨을 거예요. 잔물결 역시 파동인데요, 그렇다면 역시 파동인 음파도 서로 충돌할까요? 그렇습니다. 서로 다른 음파가 만나 겹쳐지면 소리에 변화가 생기는 '간섭' 현상이 일어납니다.

간섭은 두 가지 형태가 있어요. 서로 만나서 소리가 강해지는 '보강간섭'과 서로 만나면 각각의 소리가 작아지는 '상쇄간섭'입니다. 어떤 간섭이 되는지는 음파 각각의 위상, 진폭, 진동수 등에 따라 결정됩니다. 비유하자면 파동 때문에 위아래로 올록볼록한 물결이 생겼을 때, 위로 볼록한 부분끼리 만나면 물결이 더 높이 일고(보강), 볼록한 부분과 오목한 부분이 겹치면 물결이 낮아지는(상쇄) 모습과 비슷합니다.

소음으로 소음 지우는 노이즈 캔슬링

노이즈 캔슬링은 '상쇄간섭'을 활용합니다. 외부 소음을 감지하고, 그 소음을 상쇄하는 음파를 발생시켜 소음을 상쇄합니다. 소음이 +1이면, -1 소음을 발생시켜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버리는 거지요. 덕분에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통해 원래 들으려고 했던 소리만 들을 수 있게 됩니다.

노이즈 캔슬링을 위해서는 외부 소음을 감지하고 그 정반대의 소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어폰 내부에는 마이크, 음파분석회로가 들어 있어요. 마이크로 바깥 소음이 들어오면 회로가 음파를 분석해서 반대 굴곡의 음파를 만들어내고, 스피커를 통해 내보냅니다. 이어폰이 만들어낸 음파와 소음이 상쇄되면서 소리가 줄어들죠. 덕분에 본래 이어폰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는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들립니다. 따라서 시끄러운 곳에서도 음량을 높이지 않아도 되고, 청각을 보호하는 효과도 생기죠.

다만 이론처럼 완벽하게 외부 소음을 없애주지는 않아요. 외부 소음을 상쇄하려면 들려오는 소리가 마이크에 닿자마자 마이크에서 소리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하고 정반대의 소리를 스피커로 내보내야 하죠. 그래서 자동차 엔진 소리, 지하철 소음같이 규칙적이거나 일정 시간 이상 지속돼 예측 가능한 소음은 상쇄하기 쉽지만, 옆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의 '불규칙한 소리'는 상대적으로 잘 지워내지 못해요.


[처음에는 엔진 소음에 시달리는 전투기·우주선 조종사 위해 개발]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원래 전투기와 우주 비행사용으로 개발됐어요.

미국 정부는 1978년 시끄러운 제트엔진과 로켓엔진 소음을 견뎌야 하는 전투기 조종사와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 비행사를 위해 노이즈 캔슬링 기술 연구를 의뢰합니다. 미국 음향업체 보스(BOSE)가 8년간의 연구 끝에 개발에 성공했죠. 보스는 1986년 첫 군용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내놓습니다.

민간에서는 독일 음향업체 젠하이저가 1987년 민간용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출시합니다.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가 비행 중 계속해서 기내 소음에 시달리는 항공기 승무원용으로 개발을 의뢰했거든요.

승용차에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이 설치되기도 합니다. 차량 엔진음을 상쇄하는 음파를 만들어서 차내 소음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일본 자동차 회사 닛산이 1990년대 초반 '블루버드' 차종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탑재한 것이 시초입니다. 그렇지만 널리 퍼지지는 않았고, 최근에야 고급 차량에 쓰이고 있어요. 현대차는 지난 11일 제네시스 GV80 차량에 노면 소음도 줄여주는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을 탑재했다고 밝혔습니다.



안주현 박사 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