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16세기 스페인, '사람 잡아먹는 산'서 銀 캐내 전쟁 치러

입력 : 2019.11.20 03:00

[포토시 은광]
스페인, 남미 볼리비아 지역 정복… 남부의 포토시 산에서 은광 발견
250년간 원주민 강제 노역 시켜… 하루 45㎏포대 25개를 옮겨야 했죠
유럽은 이 銀으로 중국 茶 대량구매… 銀 부족해지자 아편전쟁으로 이어져

볼리비아에서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으로 14년간 장기 집권했던 에보 모랄레스(Morales·60)가 지난 10일 부정선거 논란으로 대통령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망명했어요. 볼리비아는 남미 12국 중 1인당 소득이 11위일 정도로 경제가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볼리비아에 한때 세계사를 바꾼 거대한 은광이 있었습니다. 행정수도 라파스에서 남동쪽으로 약 400㎞ 거리에 있는 포토시(Potosi) 은광입니다.

"이 고귀한 산이 세상을 정복하게 할 것"

1535년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지금 볼리비아 지역을 식민지로 삼습니다. 당시에 볼리비아라는 나라는 없었고, 해발고도 3000m가 넘는 고산지대라 '높은 페루(Alto Peru)'라 불리는 땅이었지요. 10년 뒤 볼리비아 남부 포토시에 있는 포토시 산에 은이 어마어마하게 묻혀 있다는 게 확인됩니다. 은광이 개발됐고, 소규모 원주민 촌락에 불과했던 포토시의 운명은 수십년 만에 딴판이 됩니다. 포토시는 스페인의 식민통치 시기 대표적 은 공급지가 됐기 때문입니다. 포토시 은광에서는 당시 한 해 세계 은 생산량의 절반이 넘는 수준의 은이 나왔어요.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을 묘사한 1585년경의 수채화입니다.
볼리비아 포토시 은광을 묘사한 1585년경의 수채화입니다. 산에 있는 은광 아래쪽으로 광부들이 사는 마을이 있어요. 원주민들이 은광석에서 은을 추출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17세기 포토시는 16만명이 살면서 유럽과 유럽 식민지를 통틀어 넷째로 큰 도시였다고 합니다. /ⓒHispanic Society of America
은광 산업이 발달하면서 포토시는 1600년대 초반 16만명 규모의 거대 도시로 성장합니다. 당시 동양과 이슬람권을 제외한 '기독교 세계'에서 넷째로 큰 규모였다고 합니다. 영국 런던, 이탈리아 밀라노, 스페인 세비야보다 인구가 많았습니다.

포토시 은광이 있는 적갈색 포토시 산(山)에는 은광석 분쇄시설 140곳이 자리 잡았어요. 광산에서 나온 은은 이곳에서 가루가 됐고, 포토시에 있던 스페인 조폐국으로 들어가 은화로 바뀌었어요.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이 고귀한 은의 산은 제왕이 세상을 정복하게 할 것"이라고 1561년 찬사를 보냅니다.

사람 잡아먹는 산

스페인 왕가 입장에서 포토시는 '부유한 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원주민 입장에서는 '사람 잡아먹는 산'이었죠. 은을 캐다가 무수한 인명이 희생됐거든요.

포토시
포토시에서는 값싼 비용으로 정기적으로 은을 생산하고자 강제 노동 부역 제도인 미타(Mita)를 실시하였어요. 미타는 1812년까지 약 250년간 지속됐습니다. 수백㎞ 떨어진 곳에 살던 원주민이 은광에서 강제 노동을 하러 끌려왔어요. 이들은 하루에 많게는 45㎏짜리 은광석 포대를 25개씩 옮겨야 했다고 합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월요일에 건강한 원주민 20명이 새로 들어오면 토요일에는 절반이 몸을 다쳐 일하지 못할 지경이었다"라고 합니다. 새로운 노동력을 확보하려고 노예무역으로 노예를 끌어 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채굴하면서 포토시 은광은 1620년대부터 은 생산량이 크게 줄어듭니다. 그 후 도시는 쇠락하게 되지요.

은이 바꾼 세계사

하지만 포토시 은광은 세계사에 거대한 흔적을 남깁니다. 우선 이 시기 생산된 은으로 유럽에서는 100년 만에 물가가 2배 이상 뛰는 물가 폭등이 일어납니다. 스페인이 채굴한 은으로 전쟁을 치르고 온갖 무역 대금을 내는 과정에서 은이 서유럽 전역에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또 유럽인은 중국 차(茶)와 같은 유럽인이 좋아하는 아시아 물건을 사는 데 늘어난 은을 쓸 수 있게 됐어요. 그렇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은이 무한정 있는 게 아니니까요. 매년 은 수백t이 중국으로 들어가자 유럽은 은이 부족해졌어요.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영국이 찾아냅니다. 마약 '아편'을 팔고 은을 받아간 겁니다. 중국이 아편 거래를 막으려고 하자 영국과 중국 사이에 아편전쟁이 터집니다. 16세기 스페인 식민지 포토시 은광에서 나왔던 은이 19세기 아편전쟁까지 이어진 겁니다.



윤서원 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