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공연 200% 즐기기] 관객과 주고받는 호흡… 영화와는 다른 무대만의 매력

입력 : 2019.11.16 03:03

[스크린과 무대 오가는 스타들]

매일 공연 올리는 강행군에도 꾸준히 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있죠
편집 거치는 영화는 감독 영향 크고 연극은 막 오르면 배우가 무대 장악
관객과 현장감 넘치는 소통하죠

최근 한국과 미국 뉴욕에서 큰 인기를 얻은 두 공연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크린에서 만나던 유명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다는 겁니다.

지난달 2일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는 조승우가 19세기 영국의 이발사 스위니 토드 역을 맡았습니다. 아내와 딸을 보살피는 가장이자 건실한 이발사였던 벤저민 바커가 15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스위니 토드로 이름을 바꿔 그를 불행으로 몰아넣은 세상에 복수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영화 '타짜' '말아톤', 드라마 '마의' '비밀의 숲'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지요. 조승우는 스타가 된 이후에도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는데 '지킬과 하이드' '헤드윅' 등을 통해 공연계에서도 최고의 배우로 꼽힙니다. 이 뮤지컬은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영화 '어벤져스'에서 '로키' 역으로 유명한 톰 히들스턴이 연극 '배신(Betrayal)'에서 주인공 로버트를 맡아 인기입니다. 아내의 마음이 자신의 친구에게 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에게는 내색하지 않는 치밀한 심리 연기를 보여주는데요, 그가 '퇴근'할 때면 사인을 받으려는 수많은 팬이 몰려듭니다.

영화 ‘타짜’의 고니(위 왼쪽) 조승우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주인공 스위니 토드(위 오른쪽)를 맡았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로키(위 왼쪽) 역을 맡았던 배우 톰 히들스턴은 연극 ‘배신’에서 주인공 로버트 역으로 나오죠. 은막의 스타로 떠올랐지만 계속해서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가 많습니다.
영화 ‘타짜’의 고니(위 왼쪽) 조승우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서 주인공 스위니 토드(위 오른쪽)를 맡았습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로키(위 왼쪽) 역을 맡았던 배우 톰 히들스턴은 연극 ‘배신’에서 주인공 로버트 역으로 나오죠. 은막의 스타로 떠올랐지만 계속해서 연극과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가 많습니다. /싸이더스·오디컴퍼니·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Marc Brenner

이런 유명 스타들이 다시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요. 조승우도, 히들스턴도 시작은 연극도였으니 '고향' 같은 무대에 적은 출연료도 불사하고 돌아오는 걸까요? 아닐 겁니다. 아마도 무대가 선사하는 작품 하나를 온전히 관통한다는 만족감이 큰 역할을 할 겁니다.

영화를 볼까요. 먼저 영화는 극 순서대로 촬영하지 않습니다. 날씨, 출연진 일정, 예산 등을 고려해 필요한 컷부터 찍습니다. 한 작품을 한 호흡에 마무리할 때 얻는 성취감을 느끼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 연기는 '내가 아닌 누군가의 삶을 사는 것'인데 전체 대본을 보지 못해 배역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연기해야 하는 상황도 생깁니다.

결정적으로 영화는 '감독의 예술', 공연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차이가 있어요. 영화에 출연한 배우는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촬영을 거듭하지만 어떤 촬영분을 쓸지 결정하는 것은 감독입니다. 때로 영화배우들은 감독이 영화 편집을 모두 끝낸 뒤 시사회장에서 처음으로 작품의 줄거리를 온전히 알게 되기도 합니다.

반면 공연 무대 위에서 배우는 '최초의 독자이자 최후의 전달자'입니다. 배우는 완성된 대본을 처음으로 읽는 최초의 독자입니다. 작가와 연출가는 대본을 읽는 배우들의 반응을 보며 작품을 수정합니다. 배우는 대본을 읽고 작가, 연출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배역을 완성해 갑니다. 막이 오르기 전까지 연출가의 지시에 자신의 의견을 더하며 인물을 완성해 갑니다. 그렇지만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무대 위 시간은 온전히 배우에게 달렸습니다. 무대 아래에서 어떤 의견 대립이 있었건, 누가 더 발언권이 강하건, 무대 위 연기는 온전히 배우의 몫입니다. 영화 촬영 현장과 편집 과정에서는 누릴 수 없는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래서 영화와 달리 공연은 '배우의 예술'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매일 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의상을 입고 똑같은 대사를 말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만족감을 얻는 것. 그것은 제약이면서도 무대 위 배우가 가지는 특권입니다. 히들스턴은 지난 8월 인터뷰에서 "연극 무대가 매력적인 건 공연마다 관객들이 '케미(조화)'를 바꾼다. 이번에 출연하는 '배신'은 블랙 유머가 많은 공연인데 어떤 날은 관객이 웃음보를 터트리고, 다른 날은 객석이 그저 조용하다. 그런 사소한 것들이 같은 대본 안에서도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고 했어요. 이런 매일매일의 새로운 경험은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히트 친 영화의 주연 배우더라도 제작 과정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연극·뮤지컬이든 영화·드라마든 관객이 접하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물입니다. 무엇이 더 뛰어난 전달 방식이라고 가치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배우 입장에서 자신이 더 빛날 순간은 무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조승우는 2012년 드라마 '마의'로 'MBC 연기대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듬해 뮤지컬 '헤드윅'에 출연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드라마를 촬영하면서도 내내 뮤지컬 무대가 그리웠다."

[뮤지컬로 데뷔한 '스파이더맨', 연극 신인배우 된 '캡틴 아메리카']

영화 '어벤져스'

인기 영화 '어벤져스'〈사진〉의 다른 출연진의 무대 출연 경력도 화려합니다. '스파이더맨' 톰 홀랜드는 2008년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로 데뷔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인공 빌리의 친구 역할이었지만, 3개월 만에 빌리 자리를 꿰차 2010년까지 무대에 올랐죠. 그는 발레리노를 꿈꾸는 빌리를 연기하기 위해 발레는 물론 아크로바틱 체조 등도 배웠는데 이는 나중에 스파이더맨 배역을 따낼 때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아이언 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1983년 뮤지컬 '아메리칸 패션'에 출연하면서 연기 생활을 시작했죠. 마크 러펄로(헐크)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요.

'캡틴 아메리카' 역의 크리스 에번스는 지난해 '로비 히어로'라는 연극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했어요. '블랙 위도우' 스칼릿 조핸슨은 2010년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을 통해 데뷔, 토니상 여우조연상을 받습니다.

유명 영화배우라고 모두 무대에서 성공을 거두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관객과 직접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공연장의 매력은 스크린의 별들마저 유혹하는 설렘 가득한 세계인가 봅니다.


이수진·공연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