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아하! 이 음식] 달달한 식혜 졸인 후 굳히면 완성! 조선시대 유생도 합격 빌며 먹었죠

입력 : 2019.11.13 03:00



대학수학능력시험(14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수험생에게 선물하는 합격 기원 음식이 초콜릿·쿠키·마카롱 등으로 다양해졌지만, 가장 역사가 오래된 건 엿〈사진〉입니다. 조선시대 수험생들도 엿을 먹었습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떠나는 유생들의 봇짐에는 엿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에는 '엄숙해야 할 과거장에 엿장수들이 들어와 어지럽혔으니 감독을 소홀히 한 금란관(禁亂官)을 문책해야 한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엿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합격을 빌며 엿을 먹는 이유는 흔히 '끈적끈적한 엿처럼 시험에 찰싹 붙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닙니다. 엿은 한자로 이(飴)라고 씁니다. 이 한자를 파자(破字), 즉 글자를 풀어보면 먹을 식(食) 변에 기쁠 태(台)로 이뤄져 있습니다. 다시 태(台) 자를 파자 하면 세모처럼 생긴 사(厶) 자 아래에 입 구(口) 자로 구성됐습니다. 입을 세모 모양으로 방실거리며 기뻐한다는 의미입니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한국의 덕담은 원하는 일이 이뤄지리란 가정하에 미리 축하하는 게 특징'이라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험생에게 엿을 먹게 하는 건 합격의 기쁨을 미리 맛보라는 의미가 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식혜와 엿은 뿌리가 같습니다. 엿기름을 넣어 만든 식혜에서 쌀을 걷어내고 졸이면 조청, 조청을 더 끓인 뒤 굳히면 엿이 됩니다. 엿은 고려시대에 이미 한반도에 널리 퍼졌다고 합니다. 고려 문신 이규보 등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이미 엿을 활용한 과자류를 먹었다고 하거든요.

엿이 입시 문제로 등장해 논란의 대상이 된 적도 있습니다. 1964년 서울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자연과목 18번 문제가 '엿기름 대신 넣어도 좋은 것을 고르라'였습니다. 디아스타제, 꿀, 녹말, 무즙이 보기로 제시됐습니다. 출제 측이 요구한 정답은 디아스타제였습니다. 그런데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다는 걸 확인한 불합격생의 부모들이 실제로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문교부(지금의 교육부)와 시교육청을 찾아가 던지며 "엿 먹어보라"고 항의했습니다. 결국 무즙도 정답 처리됐고, 소송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구제됐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엿은 시험 합격의 아이콘으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합니다.


김성윤 음식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