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국왕 살해 기도' 17세기 영국인, 지금 홍콩서 저항의 상징

입력 : 2019.11.13 03:00

[가이 포크스]
독실한 천주교도로 영국 국교에 불만
제임스 1세 즉위하면 국교도 바뀌어 다시 천주교 될거라 기대했지만 무산
왕·귀족 몰살 계획 세웠다 발각됐죠

시간 지나 왕실에 저항한 인물로 평가… 영화 '브이 포 벤데타'로 굳어졌어요

가이 포크스
지난 6월 송환법으로 촉발된 홍콩 시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7일 홍콩중문대에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학생들이 졸업식에 앞서 시위를 했습니다. 홍콩 당국은 '복면금지법'을 시행하면서 시위대가 가면을 쓰지 못하게 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이에 불복하고 항의의 의미로 계속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툭 튀어나온 광대와 붉게 물든 볼, 긴 콧수염과 대비되는 단정한 턱수염, 입이 귀에 걸릴 듯 웃고 있는 표정의 가이 포크스 가면은 홍콩 시위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시위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유와 저항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실제 이 가면의 주인공인 가이 포크스(Fawkes·1570~1606·작은 사진)는 사실 자유를 탄압하려 했던 사람이었다는 거, 아셨나요?

개신교 탄압 원했던 독실한 천주교도

가이 포크스는 1570년 잉글랜드에서 태어나 천주교 신자인 어머니 아래서 자라납니다. 포크스 역시 독실한 천주교도였는데, '천주교의 승리를 위해서'라며 물려받은 재산을 처분해 1595년 네덜란드 독립전쟁에 참전합니다. 네덜란드는 스페인 지배에서 독립하겠다면서 전쟁을 일으켰어요. 당시 독립전쟁이 일어난 원인 중 하나가 네덜란드(개신교)와 스페인(천주교)의 종교 갈등이었습니다. 포크스는 천주교를 위해서 스물다섯 나이에 스페인 편을 들며 전장에 나선 것이죠. 포크스는 네덜란드가 원하던 정치적 자유와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러 간 인물인 셈입니다.

천주교에서 벗어나 '국교회(성공회)'가 국교였던 잉글랜드는 불과 몇 년 전인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무찌르는 등 스페인과 사이가 나빴어요. 영국과 스페인은 이 시기에도 적대하고 있었는데 포크스의 종교적 신념은 국적을 뛰어넘을 정도였던 것이죠.

1603년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가 숨지면서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합니다. 잉글랜드 내 천주교도는 제임스 1세가 국교를 다시 천주교로 바꿔주기를 기대했어요. 그렇지만 그는 엘리자베스 1세처럼 '법령을 위반하지 않는 한 (천주교도에게) 어떠한 박해도 없을 것'이라는 정도의 입장이었죠. 어느 정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이지만, '천주교만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 포크스는 이런 입장이 실망스러웠습니다.

지난 5일 홍콩에서 시위대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일 홍콩에서 시위대가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가이 포크스 가면은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독재자와 싸우는 혁명가가 쓰고 다니면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가면의 모델이 된 실존 인물 가이 포크스는 17세기 영국 '제임스 1세' 국왕을 시해하려다가 실패해 처형당한 인물입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래서 포크스는 같은 해 스페인으로 건너가 펠리페 3세를 만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에서 개신교 세력을 몰아내고 천주교를 국교로 만들 혁명을 일으키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합니다. 그렇지만 펠리페 3세는 이 요구를 거절하죠.

테러 일으켜 제임스 1세 살해 기도

스페인의 지원은 없었지만, 영국에서는 천주교를 믿는 귀족들 주도로 제임스 1세를 제거하려는 음모가 이뤄집니다. 가이 포크스도 여기 가담했죠. 이들은 1604년 제임스 1세가 영국 의회 개원에 맞춰 연설하기로 한 11월 5일 거사를 일으키기로 합니다. 이들은 의회가 열리는 웨스트민스터궁 지하실에서 화약을 터뜨려 왕과 개신교 귀족을 몰살하기로 합니다.

이 계획은 거사 계획이 미리 알려지면서 실패로 돌아갑니다. 천주교 성향 의원이었던 윌리엄 파커에게 익명의 편지가 배달됐는데, '의회 개원에 맞춰 화약을 터뜨릴 테니 그날은 집에 있으라'는 내용이었어요. 파커는 천주교를 믿었지만 테러는 나쁘다고 생각했고, 제임스 1세에게 이 사실을 알렸어요.

포크스는 거사 전날인 11월 4일 저녁, 의사당 지하에서 화약 더미와 함께 발각돼 붙잡힙니다. 그는 체포돼 고문을 받으며 '동지들'의 이름을 모두 불었습니다. 포크스와 일당은 대부분 사형장에서 처형됐죠.

영화 통해 자유·저항 상징으로 알려져

포크스는 자기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은 억압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자유'와는 거리가 있던 인물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테러리스트'라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왕실에 저항한 혁명가' 이미지가 더 강해집니다. 그러다 2006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브이 포 벤데타(피의 복수)'가 나오면서 가이 포크스는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됩니다. 2040년의 영국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브이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다닙니다. 브이는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독재자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혁명가로 묘사되죠. 이 영화 이후로 수많은 시위에서 가이 포크스 가면이 등장하고 있지요.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