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책을 왜 접고 오리니?" 묻는다면… "예술"이라 말합니다

입력 : 2019.11.12 03:05

북아트

학교 방과 후 수업 시간에 '북아트(book art)'를 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펼치면 접힌 부분이 튀어 오르는 '팝업 북', 종이를 접어서 자신만의 책을 만드는 '주름 접기 책', 버려진 책의 페이지마다 종이접기 하듯 접어 입체물을 만드는 '북 폴딩 아트'까지 종류가 다양하죠. 최근에는 방탄소년단 멤버 얼굴을 북 폴딩으로 표현한 작품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북아트에서 책은 흔히 생각하는 지식 전달 수단이라는 기능 대신 일종의 캔버스 역할을 맡게 되죠. 통으로 묶여 있는 수십, 수백 장의 종이를 재료 삼아 '종이 뭉치'가 가진 예술적 가능성을 폭넓게 탐구하죠. 북 폴딩만 해도 책 페이지를 반복적으로 접거나 잘라내서 종이로 조각품을 만들어내니까요. 지시에 따라 북 폴딩을 하다 보면 머릿속 생각도 정리되고 노력한 만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하니 교육 분야에서 인기를 얻는 이유가 이해됩니다. 물론 아무 책이나 집어 들고 접다 보면 '책을 파괴한다'는 핀잔을 듣겠지만요.
김준혁 작가가 북 폴딩 기법으로 표현한 방탄소년단 지민(왼쪽), 18세기 영국 시인·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가 직접 제작한 책 ‘순수와 경험의 노래’의 속지(가운데), 잉크를 쓰지 않고 돋을새김 기법으로 만든 책 ‘넘버 5 컬처 샤넬’.
김준혁 작가가 북 폴딩 기법으로 표현한 방탄소년단 지민(왼쪽), 18세기 영국 시인·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가 직접 제작한 책 ‘순수와 경험의 노래’의 속지(가운데), 잉크를 쓰지 않고 돋을새김 기법으로 만든 책 ‘넘버 5 컬처 샤넬’. /한국 북폴딩아트 협회·쿠퍼 휴잇 디자인뮤지엄·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런데 사실 북아트는 이보다 훨씬 넓은 분야입니다. 북아트는 책의 탄생과 궤를 함께합니다. 옛날에는 책이 귀했기 때문에 책 하나 만드는 데도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어요. 손 글씨로 내용을 하나하나 적고, 장식을 그리고, 좋은 재료를 사용해 정성 들여 제본하고 커버까지 만드는 장정까지 끝내야 제대로 된 책 한 권이 탄생했죠. '예술이다!' 탄성이 나올 정도로 만듦새에 정성을 들이는 태도에서 북아트가 시작했어요.

대표적으로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책의 형태로 구현한 경우가 있어요. 영국의 화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블레이크(1757~1827)가 이 분야의 창시자로 꼽히죠. 그는 1790년대에 시집 '순수와 경험의 노래'를 손수 만들어냅니다. 신비로운 상상력이 깃든 모든 삽화를 직접 그렸고, 시구도 자신이 직접 썼어요. 판화로 수십 부만 인쇄했는데 채색, 인쇄, 장정 등 모든 과정을 본인과 아내 힘으로 해냈어요. 책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습니다.

'이런 책도 있을까' 싶은 책을 만들어내는 것도 북아트에서 빠질 수 없죠. 명품 브랜드 샤넬은 회사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향수 '넘버 5'에 대한 책을 2013년 펴냈습니다. 디자인을 맡은 네덜란드 북 디자이너 이르마 봄은 새하얀 종이에 책의 모든 텍스트와 이미지를 잉크 없이 엠보싱 기법으로만 표현했어요. 페이지마다 압력을 가해 돋을새김으로만 책을 만들어낸 겁니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이라는 편견을 깨뜨렸죠. '촉각으로 읽는 예술품'이란 찬사가 나왔습니다. 북아트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역사적인 장르라는 것, 이제는 아시겠죠?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