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컨테이너 뚫은 코뿔소처럼… 中 뒤흔드는 자유라는 바람

입력 : 2019.11.09 03:05

['베이징에 부는 바람'展]

청소년기에 개혁개방 직접 겪었던 1970·80년대생 中 예술가들 작품
강철 상자에 갇힌 기린 작품은 자유로운 표현 막힌 예술가 모습
위로 갈수록 무거운 물건 쌓은 탑은 높은 모래성처럼 불안한 사회 표현

중국의 수도 베이징은 국제적 도시입니다. 2008년에는 베이징올림픽이 열렸고, 2022년에는 동계올림픽도 열릴 예정이지요. 현대미술 분야에서도 베이징은 전 세계 미술인들이 주목하는 곳이랍니다. 베이징 국제 비엔날레를 비롯하여 대규모 국제 전시회가 쉴 새 없이 열리고 있어요. 베이징에는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처럼 미술가들의 작업실이 모여 있는 구역도 있죠.

베이징이 이렇게 국제적 도시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쯤부터입니다. 1978년 중국 공산당 정부가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하면서 미술 분야에서도 변화가 일어나죠. 1985년 중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미술 운동이 일어나 기존의 가치관에 거대한 균열을 일으킵니다. 이어 1991년 소련이 붕괴하고 공산권이던 중국에서 자본주의의 영향이 눈에 띄게 커지죠.

새로운 것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기존의 것들과 여러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그 모순과 혼란의 시기에 태어난 중국의 아이들은 어떻게 청소년기를 보냈을까요? 천안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내년 2월 2일까지 중국 현대미술 전시 '베이징에 부는 바람'을 선보입니다. 1970~1980년대 출생해 2000년대에 활발하게 활동하는 신세대 중국 미술가의 경험이 담긴 작품이 50여점 소개되고 있어요.
작품① - 리후이, 분열적 진실, 2018.
작품① - 리후이, 분열적 진실, 2018.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리후이(42)의 작품1은 좁은 상자 안에 터질 듯 갇힌 동물의 답답함을 표현하고 있어요. 네모난 컨테이너는 울퉁불퉁하게 찌그러져 있는데, 안에 갇힌 동물의 몸통 윤곽을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쪽 면에서는 이미 뿔이 뚫고 튀어나와 있어요. 컨테이너 안에서 금방이라도 코뿔소가 달려나올 것만 같아요. 작가는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억누르는 여러 보이지 않는 상황을 컨테이너로 표현하고, 그 제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을 상자 안의 코뿔소로 나타냈지요.

가오레이(39)는 철과 알루미늄으로 강철 상자에 갇혀 있는 듯한 기린의 뒷모습을 만들었어요(작품2). 기린이라는 동물은 목과 다리가 너무 길어서 일반적 네모 창살 우리에 가두어 두기 곤란하지요.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통은 지붕 있는 세모난 통에 넣고, 다리는 쇠사슬로 고정했어요. 머리와 목은 만들지 않았지만, 벽장에 숨 막히게 들어가 있는 듯 느껴져서 안쓰럽네요. 가오레이와 리후이는 중국 미술가의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것이 무엇인지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집니다.
작품② - 가오레이, M-175, 2012(사진 왼쪽). 작품③ - 정환, 선물, 2015(사진 오른쪽).
작품② - 가오레이, M-175, 2012(사진 왼쪽). 작품③ - 정환, 선물, 2015(사진 오른쪽).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동물을 통해 인간 사회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3도 있어요. 정환(36)의 작품인데, 부엉이 박제를 작품 요소로 활용했어요. 부엉이는 반짝거리는 황금색 울타리 위에 앉아 있는데, 그 울타리는 거울 받침대에 올려져 있어 더욱 반짝입니다. 멀리서 무언가 대단해 보이는 것을 보고 날아들었을 부엉이는 곧 그것이 자신을 가둬 버릴 철창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겠지요. 실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멀리서 볼 때의 이미지처럼 화려하지만은 않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작품4는 루핑위안(35)이 만든 것으로, 미국 장난감인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에서 착안한 커다란 조각입니다.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에 나오면서 널리 알려졌죠. 중국 거리 곳곳의 마오쩌둥 동상을 수도 없이 보고 자라났겠지만, 신세대에게는 미국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이것 봐! 나는 피카소야!'라는 제목도 흥미롭습니다. 대중문화 캐릭터가 자기가 현대미술계 거장이라고 외치는 역설이죠.
작품④ - 루핑위안, ‘이것 봐! 나는 피카소야!’ 1805-C, 2018(사진 왼쪽). 작품⑤ - 오우양춘, 무한의 기둥, 2016(사진 오른쪽).
작품④ - 루핑위안, ‘이것 봐! 나는 피카소야!’ 1805-C, 2018(사진 왼쪽). 작품⑤ - 오우양춘, 무한의 기둥, 2016(사진 오른쪽). /천안 아라리오갤러리

작품5는 오우양춘(45)이 자기 방에 있는 일상적 물건으로 쌓아 올린 탑이에요. 탑 아래쪽에는 조립 장난감 상자, 책, 팔레트가 보여요. 이렇게 작고 가벼운 물건들이 밑부분에 놓이고, 그 위로 지구본, 안락의자, 그리고 쇠로 된 난로에 이르기까지 점점 크고 무거운 것들이 올려져 있어요. 무너질 듯 아슬아슬한 느낌이 듭니다. 작가는 보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려고 일부러 점점 더 크고 무거운 것을 쌓아 올렸어요. 우리 사회는 겉보기에는 멀쩡하게 발전하는 듯해도, 만일 그 발전이 이 탑처럼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작품이죠.

이처럼 중국의 신세대 미술가들은 이상화된 중국의 정신과 역사가 아니라, 이것저것 혼합된 자신들의 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그리 심각해 보이지 않는 태도로 은근히 사회비판적 생각을 전하고 있기도 하지요.

흔한 물건 덧붙여 만든 아상블라주
미술 고귀하다는 생각에 질문 던져


오우양춘의 작품5에서처럼 주변의 흔한 물건들을 서로 덧붙여 만든 조각품을 아상블라주(assemblage)라고 부릅니다. 아상블라주는 만드는 방식 자체가 반항적이고 모순적이에요. 왜냐면 사람들은 미술 작품이 일상 생활용품과는 차원이 다른 순수하고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아상블라주는 주로 쓸모없이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붙이는 경우가 많아서, 미술계의 엄숙함에 질문을 던지죠.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