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논에서는 잡초 없애는 일꾼, 논 밖에선 생태계 파괴범?

입력 : 2019.10.31 03:00

[왕우렁이]
논에서 잡초 먹어 제초제 대신 쓰여… 태풍·집중호우 때 논 밖으로 유출
농작물·식물 닥치는 대로 먹어 '골치'… 환경부, 생태계 교란 생물 지정 추진

지난 20일 환경부는 왕우렁이를 비롯한 생물 6종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어요. 농약을 대신해 잡초를 제거하는 역할로 친환경 벼농사에 널리 쓰였던 왕우렁이가 왜 문제가 된 걸까요?

잡초 깡그리 먹어 치우는 왕우렁이

왕우렁이는 달팽이, 오징어와 같은 연체동물입니다. 크고 단단한 껍데기가 사과를 닮았다고 해서 영어 이름은 사과달팽이(apple snail)입니다.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입니다. 토종 논우렁이에 비하면 껍데기가 매우 둥글고 커서 왕우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어요. 왕우렁이는 껍데기 지름이 평균 4㎝ 정도로 논우렁이(평균 3㎝)보다 큽니다. 왕우렁이는 1983년 식용으로 우리나라에 도입됐고, 1992년부터는 논의 잡초를 제거하는 데 이용하기 시작했어요. 왕우렁이는 식욕이 엄청나서 논에 자라는 잡초를 잘 먹어 치웠거든요. 잡초를 죽이는 제초제 대신에 왕우렁이를 쓰기로 했던 거죠.

[재미있는 과학] 논에서는 잡초 없애는 일꾼, 논 밖에선 생태계 파괴범?
/그래픽=안병현
이런 '왕우렁이 농법'을 하는 농토 면적은 2000년 179㏊에서 2013년 10만㏊로 크게 늘었어요. 친환경 안전 농산물 재배지에서는 제초제 사용이 금지됐고, 잡초 때문에 벼 수확량이 크게 줄었어요. 그런데 왕우렁이를 쓰면 잡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어요. 농촌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모내기 7일 뒤에 왕우렁이를 논에 풀어놓으면 잡초 발생이 최대 98.7%까지 억제됐다고 해요. 친환경 농법으로 이용되던 오리 농법이 조류인플루엔자(AI) 유행으로 주춤하면서 왕우렁이 농법은 더 널리 퍼져 나갔어요.

논 밖으로 빠져나가면 골칫덩이

문제는 이 왕우렁이들이 논 밖으로 나가면서 벌어집니다. 왕우렁이 농법을 하는 논은 유출을 막기 위해 촘촘한 거름망을 설치, 왕우렁이가 물길을 따라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름철 태풍이나 집중호우 시기에는 이런 방지책도 효과가 줄어요.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왕우렁이는 북쪽으로는 철원 민통선 벼농사 지역, 남쪽으로는 제주도 미나리 농장에서까지 발견됐다고 합니다.

왕우렁이가 논 밖으로 퍼져 나갈 경우 빠른 번식력과 왕성한 식욕으로 생태계를 파괴할 가능성이 커요. 왕우렁이 한 마리는 식물을 하루 평균 30~50g 섭취합니다. 특히 물에서 재배하는 미나리 농장이 왕우렁이 피해가 극심한 편입니다. 또 희귀 식물종도 가리지 않고 먹을 거란 우려가 커요. 또 많이 먹는 만큼 많이 쌉니다. 왕우렁이 배설물은 물을 탁하게 해서 수질을 나쁘게 해요.

과거에는 왕우렁이가 한겨울이면 얼어 죽어서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강원도에서 왕우렁이가 월동에 성공한 사례가 나오는 등 지구온난화로 왕우렁이가 겨울에도 생존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요. 2012년 연구에 따르면 2020년대에는 우리나라 면적의 45.5%, 2080년대에는 88.4%에 왕우렁이가 분포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왕우렁이 사실 벼도 먹는다

왕우렁이는 사실 벼도 먹어 치웁니다. 특히 이제 막 자라나는 어린 벼는 왕우렁이에게는 잡초와 똑같은 먹잇감입니다. 왕우렁이에 의한 벼의 가해 상태 연구(2002)에 따르면 벼가 작고 어릴수록 피해가 컸어요. 벼가 충분히 자라기 전에 왕우렁이를 넣으면 오히려 농사를 망칠 수도 있는 거죠. 벼 높이가 10㎝ 정도로 작을 때는 93.6%가 왕우렁이에게 해를 입었다고 해요. 일부 덩치 큰 왕우렁이는 모내기 후 45일이 지나 키가 70㎝가 넘는 벼도 먹었고요.

외국에서도 피해 사례를 찾아볼 수 있어요. 1989년에는 일본 규슈 8개 현에서 야생화된 왕우렁이가 벼 피해를 일으켰어요. 원산지인 남아메리카 브라질, 콜롬비아,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등의 나라에서도 피해 사례가 보고됐고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서는 2013년 왕우렁이를 '세계 100대 악성 침입 외래종' 중 하나로 선정했어요.

제초제를 쓰지 않으려면 왕우렁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왕우렁이는 통제가 어려워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이 높아요. 농민과 환경부 모두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한마리가 1년에 알 4300개 낳아… 부화율 96%… '왕성한 번식력']

왕우렁이의 수명은 2~6년으로 알려져 있어요. 20~33도 수온에서 잘 자랍니다. 겨울이 찾아와 수온이 떨어지면 서식지인 논, 물웅덩이, 저수지 아래 땅속이나 수중에서 월동합니다. 수온이 2도 이상이면 월동할 수 있어요.

아가미로만 호흡하는 토종 논우렁이와는 달리 왕우렁이는 아가미와 폐로 모두 숨을 쉴 수 있어요. 그래서 물속과 물 밖에서 모두 생활할 수 있어요. 왕우렁이는 특히 알을 낳을 때 물속이 아닌 수면 위에 올라와 있는 식물 줄기, 돌, 쓰레기 등을 활용합니다. 분홍색 알을 한 번에 200~1500개까지 무더기로 낳아요. 한 해 낳는 알 숫자를 모두 합치면 암컷 한 마리당 평균 4300개쯤 된다고 합니다. 약 1주일 지나면 알에서 부화하는데 부화율도 96%로 높습니다. 부화해 약 50~60일이면 번식이 가능한 성체가 됩니다.

왕우렁이는 유기물이 많은 논, 용수로, 늪, 저수지, 호수 등에 삽니다. 왕우렁이는 오염된 물에도 잘 적응하고, 산소가 희박해도 6개월 이상 생존할 정도로 생명력이 강합니다.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