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태조 이성계의 능…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억새로 덮여

입력 : 2019.10.29 03:00

[건원릉]
이성계, '1·2차 왕자의 난' 겪은 후 왕위 내려놓고 함흥에 머물렀어요

죽어서도 함흥에 묻히고 싶어했지만 신하들이 제사 지내기 어렵다며 만류
"함흥서 억새 가져와 덮어달라" 유언

문화재청이 경기도 구리 동구릉 안에 있는 건원릉(健元陵)을 다음 달 17일까지 특별 개방하고 있어요. 건원릉은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무덤인데, 조선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잔디가 아니라 억새로 덮인 능이에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요?

'왕자의 난'으로 왕위 내려놓은 태조

태조 이성계는 74세까지 살았지만, 왕위에 있었던 기간은 1392년부터 1398년까지 겨우 6년뿐이었어요. 고려 태조 왕건이 25년, 명나라 태조 주원장이 30년 동안 왕위에 있었던 것에 비하면 아주 짧았죠.

새로운 왕조인 조선의 첫 군주가 된 고려 무장 출신의 태조는 즉위할 때 58세로 당시로선 상당히 많은 나이였습니다. 곧바로 후계자를 정해야 했죠. 그런데 이 첫 단추부터 사달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뉴스 속의 한국사] 태조 이성계의 능…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억새로 덮여
/그림=안병현
태조의 첫 아내는 젊은 시절 고향 함흥에서 결혼했던 신의왕후 한씨였어요. 그런데 신의왕후는 태조가 왕위에 오르기 한 해 전에 별세했어요. 신의왕후에게서 낳은 아들이 이방우·이방과(훗날 정종)·이방간·이방원(훗날 태종)이었어요.

1392년 태조가 조선을 개국할 때 왕비가 된 인물은 둘째 부인인 신덕왕후 강씨였어요. 신덕왕후에게서 낳은 아들은 이방번과 이방석이었죠. 문제는 태조가 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신덕왕후가 낳은 여덟째 아들 이방석을 세자로 앉혔다는 것이었어요. 신의왕후 소생 왕자 중 조선 개국 과정에서 많은 공을 세웠던 5남 이방원이 가장 큰 불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이라 불린 정변이 일어났어요. 다른 왕자들과 함께 군사를 일으킨 이방원은 정도전·남은 같은 반대파 중신들을 살해하고 이방번·이방석 형제도 죽였어요. 자기 자식이 이복형제에게 칼을 휘두르는 꼴을 본 태조는 몹시 상심한 끝에 왕위에서 물러났고, 새 세자인 차남 이방과가 2대 임금 정종이 됐습니다.

"함흥의 억새로 내 무덤을 덮어 달라"

그런데 또 한 번 '제2차 왕자의 난'이라 불리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정종에게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 되자 신의왕후 소생의 4남 이방간과 5남 이방원 사이에 갈등이 불거져 1400년에 무력 충돌이 벌어졌던 것이죠. 이 싸움에서 승리한 이방원은 이해 11월 정종에게서 왕위를 물려받아 3대 임금 태종으로 즉위했습니다.

'상왕'으로 물러앉았던 태조 이성계는 태종이 즉위하자 상왕의 아버지인 '태상왕'이 됐습니다. 태조는 형제들을 죽이고 왕좌에 앉은 태종을 극도로 미워해 한양(서울)을 떠나 소요산과 함흥에 오래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함흥에 있을 때는 태종이 문안 사절을 보내면 그때마다 그 사절을 죽여 버리거나 잡아 가뒀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임금이 중요한 임무를 위해 파견했던 임시 벼슬을 차사(差使)라고 하는데요, 심부름을 보낸 사람이 도통 소식이 없을 때 '함흥차사'라고 하는 말이 여기서 생겨났다고 합니다.

태조는 무학대사의 간청으로 1402년 한양으로 돌아왔고, 140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태조는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에 함께 묻히고 싶어했지만 계모를 미워한 태종이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여겨 "조상들이 계신 함흥에 묻어 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역대 임금이 제사를 지내러 함흥까지 가야 하니 곤란하다는 반응이 나오자 "그럼 함흥에서 가져온 억새로 내 봉분을 덮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거예요. 해마다 4월 초 한식 날에는 건원릉을 덮은 억새를 자르는 예초(刈草) 행사가 이뤄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왕릉 아홉개 모여있는 '동구릉']

태조 이성계의 무덤 건원릉은 사적 제193호인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東九陵) 안에 있습니다. 서울 도성 동쪽에 있는 아홉 개의 능이라고 해서 '동구릉'이라 부르지요.

197만㎡(약 59만평)에 이르는 넓은 숲에 건원릉과 현릉(문종과 현덕왕후), 목릉(선조와 의인왕후·인목왕후), 숭릉(현종과 명성왕후), 휘릉(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혜릉(경종의 원비 단의왕후), 원릉(영조와 정순왕후), 경릉(헌종과 효현왕후·효정왕후), 수릉(순조의 원자인 문조와 신정익왕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09년에 다른 조선왕릉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