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공연 200% 즐기기] 고대 그리스의 야외극장, 르네상스 때 실내로 들어왔죠

입력 : 2019.10.26 03:00

[극장 변천사]
공연장 뿌리는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
르네상스 시기 실내 극장 발전하며 배우·관객 분리한 '액자 무대' 등장
현대에는 무대·객석 구분 없애기도

영화와 공연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동시에 여러 곳에서 몇 번이고 똑같이 상영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공연은 현장에 있어야만 볼 수 있습니다. 유일무이한 라이브 공연이 공연장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같은 내용, 같은 배우가 출연해도 내가 본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니까요. 이런 찰나의 순간을 좀 더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하는 곳이 공연장입니다. 공연장이 살가운 이유는 그곳에 사람들의 숨결이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 공연장과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극장'이란 연극, 무용, 뮤지컬을 공연하는 곳과 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함께 지칭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은 '영화관'으로, 무용, 연극, 뮤지컬 등을 올리는 극장은 '공연장'으로 나눠서 부르는 추세지요. 무대 공연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특히 뮤지컬 등의 상업 공연이 늘어나면서 두 극장을 분리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현대 극장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 야외극장(왼쪽)입니다.
현대 극장의 원형은 고대 그리스 야외극장(왼쪽)입니다. 르네상스 시기 실내 극장이 본격적으로 지어지면서 프로시니엄 아치를 경계로 무대와 객석이 나뉩니다. 프랑스 파리 가르니에 오페라극장(가운데)의 무대 막 주변이 프로시니엄 아치입니다. 20세기 들어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블랙박스'식 공연장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어요. 작년 개관한 세종문화회관 세종S씨어터처럼요. /위키피디아·게티이미지코리아·세종문화회관
아직도 예전 극장 형태가 남아있는 영화관에서는 공연장처럼 무대가 남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지은 대규모 영화관은 무대가 없죠. 무대가 스크린을 가리기도 하고, 공연을 할 계획이 없으니 굳이 돈을 들여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사실 뿌리는 하나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이죠.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원형극장은 시민에게 검투기, 연극 등의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국가가 마련한 야외 시설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베로나에 있는 아레나 극장이나 프랑스 남부의 오랑주 극장은 고대 극장 유적지를 아직도 그대로 극장으로 사용하여 여름마다 오페라 축제가 열립니다. 그만큼 정교하게 지어진 덕분이지요.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서 야외가 아닌 실내 극장이 화려하게 발전합니다. 중세를 짓눌렀던 신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종교 이외의 즐길 거리를 찾았고, 귀족들은 화려한 극장 장식으로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오페라 발상지였던 이탈리아에서는 무대와 객석의 경계에 프로시니엄(proscenium) 아치를 세웠습니다. 프로시니엄 아치는 TV나 스마트폰의 '스크린 테두리' 역할을 합니다. 관객은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연기에만 집중하면 됐죠. 객석에서 무대가 마치 하나의 액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액자 무대'라고도 불립니다. 이런 극장을 '프로시니엄 극장'이라고 부릅니다.

프로시니엄 극장은 마리 앙투아네트로 상징되는 로코코 시대에 화려함의 절정을 이룹니다. 이 아름다운 극장들을 휩쓴 최대의 히트작은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이었지요. 이 작품은 부정부패한 귀족 계급을 풍자하며 역설적이게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는 데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프로시니엄 극장은 19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사실주의 연극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배우들은 과장된 연기를 버리고 무대 위에서 진짜 삶을 사는 듯이 자연스럽게 연기했어요. 배우들은 프로시니엄 아치 건너편에 있는 관객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어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이 자신들과 관객을 막은 것처럼요.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3면이 가려진 방을 투명한 유리벽(프로시니엄 아치)을 통해 들여본다는 느낌이 들었죠. 이렇게 프로시니엄 아치가 만드는 경계를 '제4의 벽'이라고 불렀어요. 드물게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걸기라도 하면 '제4의 벽을 뚫고 나왔다'고 했죠.

프로시니엄 극장은 무대 뒷부분의 깊숙한 공간과 무대 천장 쪽에 각종 무대 장치를 숨기고 사실적인 양식의 무대를 쉽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객석과 무대가 철저하게 분리되면서 관객이 등장인물에게 공감하기 다소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죠.

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블랙박스 극장'이 점차 프로시니엄 극장을 대신하기 시작합니다. 블랙박스 극장은 하나의 큰 상자라는 개념입니다. 객석과 무대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와 관객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는 가까워집니다. 무대를 사방에서 둘러싸는 형태로 객석을 배치하기도 하고, 무대 위에 객석을 올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소극장 운동과 맞물려 블랙박스 극장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정해진 규칙은 없지만, 공연의 환상을 유지하려는 화려한 대규모 작품의 경우 프로시니엄 아치가 있는 극장을 선호하고 현대적인 연출의 공연은 블랙박스 극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서울 예술의전당을 예로 들면 오페라극장은 프로시니엄 극장, 자유소극장은 블랙박스 극장입니다.


[우리나라 최초 실내 극장, 협률사]


19세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극장이라는 개념이 없었어요. 판소리·가면극·무용·줄타기·땅재주 등은 특별한 무대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멍석만 깔면 그게 무대였습니다.

1902년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협률사(協律社)'를 지으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실내 극장이 등장합니다. 협률사는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둥그런 모양으로 지어 지붕을 얹은 서양식 극장으로 서울 정동에 세워졌어요. 전기를 끌어들여 실내 조명과 무대 조명도 제대로 갖췄습니다. 2층 구조의 500석 남짓한 객석과 무대, 무대 뒤는 커튼으로 가려 백스테이지를 감췄고 그 안에는 의상을 만드는 침모방도 있었다고 합니다.

협률사 최초의 유료 무대 공연은 '소춘대유희(笑春臺遊戱)'였습니다. 특정한 줄거리 없이 기녀들의 춤, 명창들의 판소리, 곡예 등 전통 연희가 어우러진 공연이었어요. 1906년 문을 닫았다가 1908년 '원각사'로 이름을 바꿔 다시 개관하지만 1914년 불타 없어집니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