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식물이야기] 추위에 스트레스받은 나무, 붉은 색소 물질 분비해 월동 준비

입력 : 2019.10.25 03:05

단풍

산이며 도시가 울긋불긋 물드는 단풍철이 찾아왔어요. 9월 말 금강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남쪽으로 서서히 내려오면서 10월 중순 제주도 한라산에까지 이릅니다. 이 때가 지나면서 한반도의 모든 산은 타는 듯이 아름다운 단풍의 '절정기'를 맞이합니다.

단풍은 계절 변화로 초록색이던 잎이 빨간색·노란색·갈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현상을 가리켜요. 노란색 은행나무, 갈색 플라타너스의 넓은 잎은 아름드리나무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풍성한 가을 빛깔을 선사합니다. 여기에 단풍나무·복자기·화살나무 등의 이파리가 빨간색을 더하면서 우리네 가을 풍경을 완성해 줍니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붉은색 안토시아닌을 합성하면서 단풍이 물듭니다.
가을이면 나뭇잎이 붉은색 안토시아닌을 합성하면서 단풍이 물듭니다. /김지호 기자
단풍은 나뭇잎 속 색소 때문에 생겨납니다. 사람의 머리카락이나 눈동자를 검게 만드는 건 '멜라닌' 색소죠. 나뭇잎에는 주황색이나 노란색을 드러내는 '카로티노이드', 빨간색을 띠는 '안토시아닌'과 같은 색소가 들어 있어 각각의 단풍 빛을 냅니다.

흔히 단풍 하면 생각나는 단풍나무의 빨간색은 안토시아닌 때문이죠. 그런데 이 안토시아닌은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생깁니다. 카로티노이드와 같은 색소는 봄이나 여름철에도 이미 세포 속에서 생성돼 녹아 있다가 가을에 초록빛 엽록소가 줄어들며 드러나는 것뿐이지만, 안토시아닌은 초가을 낮의 길이가 짧아지고 밤 기온이 크게 낮아지는 등 갑작스레 환경이 변화하면 스트레스를 받아 합성되기 시작하거든요. 우리 눈을 즐겁게 하는 단풍이 사실 식물에는 스트레스라니 의외인가요.

그렇지만 식물이 안토시아닌을 합성하는 이유는 추위로 인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입니다. 일종의 생존 전략이죠. 안토시아닌은 이파리에서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둔 당분을 에너지 저장 기관인 나무줄기나 뿌리로 옮겨놓아요. 추운 겨울에 대비하는 전략이죠. 이파리가 떨어지기 전에 이파리가 만들어둔 에너지를 옮기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이파리에 안토시아닌이 많이 생겨나면서 색깔이 붉어지는 것이죠. 추운 북쪽의 포플러는 남쪽의 같은 종 식물보다 안토시아닌을 더 많이 저장하는 경향이 관찰됐고, 안토시아닌을 다른 종의 식물에 비해 많이 저장하는 홍가시나무는 추위로 다른 식물이 성장을 멈출 때도 더 자란다는 보고도 있어요.

또 안토시아닌은 가을철 해충으로부터 나무를 지켜주는 역할도 합니다. 나뭇잎이 진한 붉은색을 띠고 있으면 해충들이 '독성물질이 있다'고 생각하고 피해갈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안토시아닌은 봄철 가뭄으로 습도가 25% 이하로 떨어지는 건조한 기후가 계속되거나 통풍이 안 되고, 해충이 발생하는 등의 환경에서는 가을이 오기 전부터 생성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 나무는 7월에 잎이 빨갛게 변하고, 한참 더운 8월 초에 잎을 다 떨어뜨리고 월동 준비에 들어가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한대요.



최새미·식물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