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발칸의 학살자… '大세르비아' 외치며 인종 청소 자행했죠

입력 : 2019.10.23 03:09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중심의 유고연방 유지 원해 독립 주장한 크로아티아·코소보 공격
2000년 민중 봉기로 대통령직 사임… 전범으로 기소됐지만 재판 도중 사망
최근 밀로셰비치 옹호하던 한트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논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Handke·76)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발칸의 도살자'로 불렸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Milosevic·1941~2006) 전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을 옹호해왔기 때문입니다.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1990년대 유고 내전 때 크로아티아·보스니아·코소보 등 발칸반도 곳곳에서 인종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그런 밀로셰비치가 2006년 사망했을 때 한트케는 직접 쓴 추모사를 읽으면서 그를 두둔했습니다. 한트케는 "밀로셰비치는 비극의 주인공"이라고 말해 희생자들의 분노를 샀죠. 한트케는 세르비아계 슬로베니아인인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탄생

유고슬라비아는 '남(南)슬라브인들의 땅'이라는 뜻이에요. 6세기쯤 남슬라브인들이 발칸반도에 정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죠. 오늘날의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코소보 등 발칸반도 서부지역을 이릅니다. 이전부터 천주교·동방정교회·이슬람교 등 다양한 종교와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 있어 분란이 끊이지 않았죠. 제1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인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난 곳인데, '유럽의 화약고'라 불렸어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인종청소’ 혐의로 기소돼 2001년 국제형사재판소에 출두하는 모습. 그는 수감 중이던 2006년 숨졌는데,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가 장례식에서 추도문을 읽었습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인종청소’ 혐의로 기소돼 2001년 국제형사재판소에 출두하는 모습. 그는 수감 중이던 2006년 숨졌는데,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가 장례식에서 추도문을 읽었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2차 대전이 끝나고 유고슬라비아에 있는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6개 나라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을 이룹니다. 훗날 유고 내전으로 해체된 유고연방(1945~1992)의 탄생입니다. 그렇지만 통합은 어려웠어요. 연방국가는 1개인데, 종교는 3개(천주교·동방정교회·이슬람교), 민족은 5개(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마케도니아인·알바니아인), 소속 국가는 6개였죠.

세르비아 민족주의 내세우며 '인종 청소'

유고 연방 구성 지도

1980년 독재자 티토가 사망하면서 유고연방은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티토는 연방 내 여섯 국가의 자치권을 인정하며 민족 간의 갈등을 무마하고 있었는데요, 그가 죽고 시간이 지날수록 연방 내 최다 인구를 차지했던 세르비아인과 나머지 민족 사이 대립이 커집니다. 1990년부터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차례로 연방에서 탈퇴합니다. 세르비아인 중심으로 유고연방을 유지하기를 원했던 밀로셰비치는 '대(大)세르비아'주의를 내세우며 독립을 원하는 국가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려 합니다. 세르비아 영토를 확장해 세르비아인을 위한 국가를 세우겠다는 것이었어요. 밀로셰비치는 1990년대 초반부터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침공하고, 각지의 세르비아 반군들을 지원해 내전을 부추겼어요.

이 과정에서 밀로셰비치는 '인종 청소'를 자행합니다. 세르비아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은 군인과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잔인하게 살해한 것이죠. 1998년에는 알바니아인이 많은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하자 '코소보 전쟁'이 벌어집니다. 밀로셰비치는 다시 한 번 인종 청소를 단행하며 알바니아인을 학살했어요. 밀로셰비치는 1989년 세르비아 대통령이 돼 권력을 잡은 뒤 2000년 민중 봉기로 물러나기까지 20만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300만명을 난민으로 만들었어요.

그는 2001년 유엔의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로부터 반인륜적 전범(戰犯)으로 기소됩니다. 교도소에 갇혀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지병으로 사망했죠. 영국 가디언은 "(한트케에게 상을 준 것은) 충격적인 윤리적 실명(失明)"이라고 비판했어요.

[맥도널드 있는 나라끼리 전쟁없다? NATO의 세르비아 폭격은 예외]

미국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1999년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맥도널드가 있는 나라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했어요.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시장경제를 통한 평화 이론입니다.

그런데 책이 나온 직후 맥도널드가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들이 코소보 전쟁을 멈추기 위해 역시 맥도널드가 진출해 있던 세르비아를 폭격하면서 이 이론에 '예외'가 생깁니다.



윤서원 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