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케냐 칼렌진족, 다리 길고 고지대서 살아… 마라톤에 최적화

입력 : 2019.10.22 03:00

케냐인과 장거리 달리기

지난 1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비공식 마라톤 대회에서 엘리우드 킵초게(Kipchoge·35) 선수가 마라톤 역사상 최초로 2시간 벽을 깨고 42.195㎞를 1시간59분40초에 완주했어요. 2시간 안에 달리기 위해 특별히 조성된 환경에서 달성한 기록이라 공식 기록은 아니지만 엄청난 사건이었죠. 킵초게는 '2시간1분39초'로 현재 남자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입니다.

케냐 칼렌진 부족 출신 엘리우드 킵초게가 지난 12일 마라톤 '2시간의 벽'을 깨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어요.
케냐 칼렌진 부족 출신 엘리우드 킵초게가 지난 12일 마라톤 '2시간의 벽'을 깨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줬어요. 그는 현 남자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입니다. /신화 연합뉴스
케냐는 지난 9번의 올림픽에서 마라톤 메달 54개 중 12개를 따낸 마라톤 강국입니다. 마라톤뿐 아니라 중장거리 달리기(800m, 1500m, 3000m 장애물, 5000m, 15000m) 종목을 포함하면 전체 메달 중 약 30%를 케냐가 휩쓸었죠. 중장거리 육상 강국 케냐를 이끄는 사람들은 '칼렌진(Kalenjin)' 부족입니다. 킵초게도 이 부족 출신이죠. 이 부족은 해발고도가 2000~2400m에 달하는 고지대에 살고 있어요. 고지대라 평지보다 산소가 희박한데, 그래서 이들 핏속에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 일반인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장거리 달리기에 필수적인 높은 산소 운반 능력을 타고나는 것이죠.

칼렌진족은 다리가 가늘고 긴데, 이 역시 장거리 달리기에 유리합니다. 덴마크 코펜하겐대는 칼렌진족과 덴마크 사람의 체형을 비교해봤어요. 연구진은 '칼렌진족 다리가 더 길고 가볍다'는 결과를 내놓습니다. 칼렌진족은 키는 덴마크 사람보다 평균 5㎝ 작았는데 다리 길이는 2㎝ 더 길었어요. 상대적으로 '롱다리'라는 뜻이죠. 덴마크인과 비교했을 때 무릎 아래부터 발목까지 무게는 약 500g 가벼웠어요. 다리가 길고 가볍다 보니 1㎞ 달릴 때 쓰는 에너지가 8%씩 절약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물리적 이유 외에도 경제·문화적 이유로 칼렌진족이 마라톤에서 강세를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케냐는 1인당 GDP가 1700달러(약 215만원)에 불과합니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연봉은 600달러 수준으로 이보다도 크게 낮아요. 그러나 마라톤으로 성공하면 사회적 명예와 부를 한 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 국제대회 상금을 받으면 최소 3000달러를 한 번에 벌 수 있어요. 보스턴마라톤 대회 같은 큰 대회에서 우승하면 상금 15만 달러를 받아 남들 90년치 연봉을 한 번에 받을 수 있죠. 힘든 훈련을 견디게 하는 큰 요인입니다.

마라톤 훈련이 '칼렌진족 중심'이라는 문화적 이유도 있어요. 40개 이상 부족으로 구성된 케냐에서 칼렌진족이 아니면 마라톤 훈련캠프에조차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다른 부족 출신이 마라톤 훈련을 받으려면 칼렌진족 여성과 결혼하거나, 칼렌진족 장로와 친분을 쌓아야 한다고 해요. 같은 케냐인 중에서도 칼렌진족이 선진화된 마라톤 훈련을 받고, 더 좋은 성과를 거두지요.



최의창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