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악기줄 끊기고 코끼리 뛰어들고… 청중에겐 그것도 매력

입력 : 2019.10.19 03:00

[무대 위의 돌발 상황]
라이브 무대 위 예기치 못한 상황들… 음악회 마니아들에게는 진귀한 경험
피아니스트 베레좁스키는 공연 중 줄 끊어지면 제거하고 연주 이어가
바이올린은 줄 풀리면 음정 떨어져 연주 멈추고 줄 조인 다음 연주 재개

공연장에 자주 다니는 분들은 연주자의 완성도 높은 멋진 연주와 함께 예기치 않게 크고 작은 실수를 하는 모습도 목격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라이브', 즉 살아 있는 연주의 매력이죠. 음악회 마니아들은 무대 위 연주자들의 편집되지 않은 모습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도 해요. 무대 위에서는 갖가지 돌발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연주자의 기량과 상관없이 악기의 상태나 그 외 여러 이유 때문에 웃지 못할 일들이 생기는 경우도 많아요.

피아노는 88개의 건반이 있는 거대한 악기입니다. 내구성도 무척 강하고 튼튼합니다만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면서 안에 있는 줄이 끊어지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50)는 내한 공연을 여러 번 해서 우리에게 친숙한데, 워낙 강한 터치와 힘을 지니고 있어 무대에서 피아노 줄이 끊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2009년 그의 내한 공연 당시 예술의 전당을 찾은 청중은 그런 광경을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쇼팽의 협주곡 2번 1악장을 연주하던 중 갑자기 줄 하나가 끊어져 버린 것이었죠. 하지만 베레좁스키는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어 보았다는 듯, 협주 중 피아노가 약간 쉬는 순간에 끊어진 줄을 악기 밖으로 빼내고 연주를 이어갔어요. 청중은 이런 깜짝 놀랄 상황에 대처하는 연주자의 침착함과 사고 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멋지게 연주를 마친 베레좁스키에게 놀라움이 담긴 박수를 보냈죠.

러시아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가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0번을 연주하고 있어요(위).
러시아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좁스키가 라 로크 당테롱 페스티벌에서 프란츠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10번을 연주하고 있어요(위). 베레좁스키는 연주 중에 피아노 줄이 끊어지자 끊어진 줄을 피아노에서 빼냅니다. 2009년 내한 공연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는데 같은 방법으로 능숙하게 대처했죠. /유튜브
피아노는 작은 망치 모양의 나무 방망이가 강철 현을 때려 소리가 나는 원리를 갖고 있죠. 방망이 끝에 달린 스펀지로 치는데 쇠로 된 줄이 끊어진다는 것이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의 큰 충격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타격을 받아 줄이 피로해진 상태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주로 오른손이 담당하는 고음역의 줄이 자주 끊어집니다. 다만 한 음에 두 줄 이상이 겹쳐 있어 줄 하나가 끊어졌다고 완전히 소리가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도 줄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고가 벌어지고는 합니다. 줄이 끊어지거나 줄감개가 갑자기 풀려 현의 음정이 떨어져 버리는 경우 등이죠. 모두 연주를 중단할 수밖에 없어 청중을 놀라게 합니다.

지난 7월 말부터 약 2주간 진행된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찾은 청중은 이 두 상황을 모두 목격했습니다. 멘델스존의 현악 5중주를 연주하던 제1바이올린 연주자가 갑자기 줄이 풀리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연주를 멈추고, 다시 줄을 조여 음정을 맞춘 다음 곡을 이어갔어요. 또 다른 연주 현장에서는 바흐의 무반주 소나타를 연주하던 바이올리니스트의 줄이 끊어졌는데요, 연주자는 당황하지 않고 무대 뒤로 퇴장해 새로운 줄을 끼우고 다시 중단된 악장의 처음부터 연주해 무사히 공연을 마쳤죠. 이틀 연속으로 돌발 상황이 일어난 당시 평창의 날씨는 강한 햇빛과 소나기가 번갈아 나타나는 등 무척 변덕스러웠는데요, 온도와 습도에 예민한 현악기들이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에 이상을 일으킨 것으로 보여요. 특히 300살이 넘은 유럽의 명기들은 주변 환경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서 연주자들은 자신의 악기를 박물관에 있는 문화재를 관리하듯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관악기도 온도와 습도에 예민하긴 마찬가지예요. 목관 악기 중 오보에는 갈대를 얇게 깎아 두 겹으로 만든 리드(풀피리처럼 마찰시켜 소리가 나게 만드는 발성 기구)를 사용하는데, 종이처럼 얇게 깎인 끝 부분이 워낙 민감해 급격한 날씨 변화를 겪으면 연주 직전 쪼개지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관악기 연주자는 악기가 갑자기 춥거나 더운 공기에 노출돼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겪지 않도록 주의하죠. 한여름 에어컨 바람이 강한 공연장에 들어설 때면, 높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악기가 닿지 않게 하느라 자신의 품 안에 악기를 품고 있는 연주자들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어요.

이런 일들은 드물게 일어나니까, 만약 이런 무대 위 상황을 보면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고 '오늘 진귀한 경험을 하는 행운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오페라 '아이다' 무대 오른 코끼리… 당황해 오케스트라 자리 난입했죠]

오페라는 음악과 연극, 미술 등 여러 분야가 혼합된 종합 예술이죠. 그래서 의외의 사고도 많습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는 고대 이집트가 배경입니다. 2막의 '개선 행진곡' 장면에서는 실제 말이나 코끼리 등 동물이 무대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끔 동물들이 무대 조명에 놀라 제멋대로 움직여 오케스트라 자리로 들어가는 사고가 생기기도 합니다.

여주인공이 마지막에 투신하며 끝나는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서는 무대 아래 쿠션 등이 준비돼 있지만 토스카의 의상이나 무대 소품이 함께 떨어지며 출연자가 다칠 때도 있다고 합니다. 멋진 오페라 공연을 보여주기 위해 무대 뒤에서는 많은 사람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한 세심한 노력을 계속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