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 이야기] 트라우마 치료에도 활용되는 '힘들었던 경험 써보기'

입력 : 2019.10.18 03:09

[글쓰기 치료]

마음이 힘들 때 3~4일 연속으로 하루 15분씩 쓰는 걸로도 충분
글쓰기 통해 억눌린 감정 풀어내면 스트레스 해소돼 몸도 건강해져요
연인 간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힘든 일을 겪게 됩니다. 크고 작은 힘든 일을 겪고 이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실제로 몸 여기저기가 자주 아프고 질병에 걸릴 확률도 높아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가까운 사람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거예요. 하지만 힘든 감정을 함께 나눌 사람이 마땅치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최소한 3일 이상 연속적으로 '글쓰기'를 해 보세요.

◇글쓰기의 긍정적인 효과

미국 텍사스대 제임스 페니베이커(Pennebaker) 교수와 동료의 연구에 의하면 우울·분노·실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글쓰기를 하면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페니베이커는 글쓰기 치료(writing therapy) 분야를 개척한 학자 중 한 명인데요, 그는 1997년 '정서적 경험에 관한 글쓰기의 치료적 효과' 발표에서 "글을 쓰고 난 후 질병으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었고, 신체 면역 기능이 전반적으로 향상됐으며, 학교나 직장에서의 업무 수행 능력과 성적이 올랐다"고 말했어요.

힘들 때 글을 쓰면 그동안 억눌렀던 감정이 풀어지면서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 즉 '감정의 정화(Catharsis·카타르시스)'를 경험합니다. 정리되지 않은 채 마음 한쪽에서 불편함으로 남아 있는 기억을 글로 정리해 보는 과정에서 과거의 아쉬움과 상처를 객관적으로 차분히 생각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좋았던 기억, 감사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어요. 글쓰기로 평소 느끼는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어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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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박다솜

페니베이커 교수는 이를 트라우마 환자 치료에도 이용했어요. 천재지변, 전쟁, 각종 폭력과 사고 목격 등 힘든 사건을 경험해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은 그 사건이 다시 발생하는 것 같은 착각과 심한 불안을 겪고는 합니다. 글쓰기 치료를 하고 나니 이런 증상들이 완화됐다고 합니다.

이런 글쓰기는 단순히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와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페니베이커의 연구에 따르면 일상적인 경험을 글로 쓰는 것만으로는 치료 효과가 없었어요. 힘들었던 경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사실 관계를 기록하고 당시 느꼈던 감정을 상세히 적을 때 효과적이었습니다.

숙제하듯 매일 써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3~4일 연속으로 쓰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나타났거든요. 페니베이커는 '필요할 때 쓰기'의 원칙을 따르라고 조언합니다.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삶을 힘들게 할 때 펜과 종이를 꺼내 글을 쓰면 된다는 겁니다.

◇연애 고민을 글로 쓰니 사이 좋아져

리처드 슬래처(Slatcher)와 페니베이커는 2006년 글쓰기가 연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연구를 발표해요. 연애 중인 86명의 미국 대학생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A그룹은 현재 연인과 사귀면서 느끼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글로 적게 했고, B그룹은 일상적인 일들을 적도록 했어요. 두 그룹 학생 모두 3일 연속으로 20분씩 해당 주제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실험이 끝난 3개월 후 당시 사귀던 사람과 계속 사귀고 있는지를 확인해봤죠. A그룹은 77%가 계속 연애를 하고 있었지만, B그룹은 52%만 관계가 지속해 절반 가까이 헤어졌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연구진은 실험 이후 커플들이 나눈 문자 내용도 동의를 받아 분석했는데요, 글쓰기 경험 이후 A그룹은 긍정적인 단어 사용이 의미 있게 증가하는 추세도 나타났습니다. 글을 통해 어떤 문제에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적어보자 연인 간 감정 교류가 더 원활해졌다는 뜻이죠.

[글쓰기 도중 슬플 수 있지만 시간 지나면 마음 편안해지죠]

먼저 남들이 방해하지 않을 시간과 장소를 정하세요. 주로 잠자리에 들기 전이 좋겠죠. 적어도 3~4일을 연달아 매번 15~20분 정도 글쓰기를 해주세요.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또 어떤 점이 불안하고 걱정되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되었으면 좋겠는지 등에 대해 솔직하게 적으세요.

힘든 일에 대한 감정을 글로 적다 보면 일시적으로는 슬프고 불편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랍니다. 슬픈 영화를 보면 눈물이 나지만 몇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듯이 글을 쓰고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예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