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근대의 문을 연 '거대 유리 건물'… 영국 위용 세계에 알렸죠

입력 : 2019.10.15 03:05

수정궁

지난달 파산한 영국 여행사 '토머스 쿡'은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가는 고객 15만명을 유치하며 이름을 널리 알린 여행사입니다. 세계 최초 엑스포인 이 박람회는 '수정궁' 박람회라고도 불렸는데요, 박람회장인 '수정궁(The Crystal Palace)'의 위용이 엄청났기 때문입니다.

쇼의 흥행을 좌지우지하는 건 관람객이 시각적으로 맞닥뜨리는 풍경입니다. 당시 '수정궁'은 만국박람회 그 자체이자 이를 넘어 근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상징물로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수정궁은 기존 건축의 문법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파격과 보는 이에게 경탄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1888년경 촬영한 영국 런던 수정궁 모습입니다. 철근과 판유리로 만든 혁신적 건물이라 화제였습니다.
1888년경 촬영한 영국 런던 수정궁 모습입니다. 철근과 판유리로 만든 혁신적 건물이라 화제였습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현 하이드 파크 부지에 세워졌던 수정궁은 정면 폭 564m, 측면 폭 124m, 최고 높이 33m에 달하는 거대한 임시 건축물이었습니다. 건물 정면 폭 564m는 1851년을 기념해 1851피트로 지었기 때문에 나온 수치입니다. 근대 건축 재료인 철과 유리, 단 두 가지 재료만 사용해 당시로선 상상하기 어려웠던 비현실적 공간을 만들었어요.

생각해보세요. 돌과 나무로 만든 건축물이 상식이던 시대에 3300개의 철골 기둥과 29만3655장의 판유리를 이음매가 거의 느껴지지 않게 조립한 장대한 건물이 햇살과 함께 눈부시게 빛나며 내외부가 연결된 듯 투명한 풍광을 선사하는 모습을요. 간단명료하고 경쾌한 인상으로 가득 찬 이 거대한 전시장은 정말 수정으로 만든 궁전처럼 환상의 공간으로 다가왔습니다.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 당시 박람회장으로 쓰였던 수정궁 내부 모습.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 당시 박람회장으로 쓰였던 수정궁 내부 모습. /위키피디아

수정궁은 파격적인 외관과 더불어 공법 면에서 근대 건축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증표입니다. 철을 이용해 기둥과 보를 구현한 최초의 철골 구조 건축물이자, 규격화된 재료를 공장에서 대량 생산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건축 방식의 시초이기 때문이죠. 덕분에 약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완공했어요. 근대 건축이 보여준 기적이라 할 수 있죠. 박람회 기간 6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임시 건물이었던 수정궁은 박람회가 끝나고 해체한 후 1854년 인근 시드넘 지역에 다시 지어 런던의 랜드마크로 남았습니다. 다만 1936년 화재로 완전히 불타버렸습니다. 소식을 들은 윈스턴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한 시대가 끝났다."

1851년 처음 열린 엑스포는 대영제국 전성기에 세계 최강국이자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영국의 존재감을 만방에 알리려는 거대한 쇼였습니다. 수정궁은 쇼의 하이라이트였죠. 이런 움직임이 몇 년 뒤 새로운 혁신을 낳았다는 점도 재미있습니다. 프랑스는 1889년 파리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거든요. 완공 당시 300m 높이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이었던 '에펠탑'입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