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있는 세계사] '해방자'라 불린 사나이… 독립 이끌어 남미합중국 세웠죠

입력 : 2019.10.09 03:09

[시몬 볼리바르]

스페인 식민지 베네수엘라서 태어나 미국을 보며 독립과 합중국 꿈꿨죠
스페인 정규군과의 전쟁 이끌어 지금의 콜롬비아·페루 일대서 승리
1819년 합중국 '그란 콜롬비아' 세워… 볼리바르 사후에 내분으로 쪼개졌죠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책을 읽던 베네수엘라 외교관이 화제가 됐어요.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내가 읽던 책"이라며 소셜미디어에 '볼리바르, 영웅, 천재 그리고 보편적 사고'의 표지를 올렸어요. 시몬 볼리바르(Bolivar·1783~1830)는 어떤 사람이기에 베네수엘라 외교관이 트럼프의 연설을 듣는 대신 그에 대한 책을 읽었던 걸까요?

'남아메리카 합중국' 꿈꿨던 독립운동가

시몬 볼리바르는 지금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파나마를 스페인 식민 통치에서 해방한 남아메리카의 독립 영웅입니다. 오늘날에도 볼리바르는 남아메리카의 '해방자'이자 '국부'로 추앙받고 있어요. '볼리비아'라는 나라 이름, 베네수엘라 화폐 단위 '볼리바르'는 모두 그의 이름을 딴 겁니다.
남아메리카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미합중국을 꿈꾸며 ‘그란 콜롬비아’를 세웠지만 연방국가는 볼리바르 사후 쪼개지고 맙니다.
남아메리카 독립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미합중국을 꿈꾸며 ‘그란 콜롬비아’를 세웠지만 연방국가는 볼리바르 사후 쪼개지고 맙니다. /위키피디아
볼리바르는 18세기 말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났어요. 당시 남아메리카는 약 300년 동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죠. 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에서 대농장과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스페인 상류층 출신이었어요. 그는 가정교사를 통해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인 루소가 역설한 자유, 평등, 해방의 가치를 배웠어요. 스페인에서 유학한 그는 스무 살이 되던 1803년부터 프랑스와 미국에 머무르면서 남아메리카 독립을 꿈꾸게 됩니다. 특히 미국이 독립 후 연방국가로 발전하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죠. 그는 남아메리카 국가들도 독립 후 미국처럼 합중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1807년 베네수엘라로 돌아온 볼리바르는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듭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볼리바르가 흑인 노예를 위해서, 남아메리카 원주민을 위해서, 메스티소(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를 위해서 독립을 꿈꿨던 사람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볼리바르의 남아메리카 독립운동은 '남아메리카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스페인 식민 세력에 차별받던 크리오요(중남미로 이주한 스페인계 백인 후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크리오요는 유럽인과 같은 피가 흘렀지만, 식민지 정부 요직을 차지하기 어려웠어요. 남아메리카 출신 크리오요가 남아메리카를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볼리바르의 생각이었습니다.

"혁명은 바다에서 한 쟁기질"
그린 콜롬비아 위치 지도

볼리바르는 1810년부터 병력을 이끌고 스페인군과 전쟁을 벌입니다. 정규군과 전투는 어려웠어요. 볼리바르는 잇달아 전투에서 패배하며 1814년 아이티로 망명을 떠납니다. 그렇지만 볼리바르는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는 1819년 2월에 독립운동 세력을 결집해 의회를 구성하고 '그란 콜롬비아' 혁명정부 수립을 공표합니다. 그 뒤로 1824년까지 베네수엘라, 누에바 그라나다(콜롬비아와 파나마), 키토(에콰도르), 페루, 그리고 볼리비아 일대에서 스페인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볼리바르는 지금의 남미 6개국(베네수엘라·콜롬비아·파나마·에콰도르·볼리비아·페루)을 독립시켰고, '해방자(El Libertator)'라는 별명을 얻어요.

미국 같은 연방제 국가를 꿈꿨던 볼리바르는 그란 콜롬비아 대통령 자리에 오릅니다. 그리고 국가 통합에 힘썼어요. 그는 해방된 남미가 유럽 세력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려면 남미의 여러 국가가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란 콜롬비아는 독립 직후부터 삐걱거립니다. 연방주의자들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어요. 유럽과 미국도 남미 대륙에 강력한 국가가 탄생하는 걸 원치 않았죠. 결국 시몬 볼리바르는 분열로 치닫는 나라를 어찌하지 못하고 1830년 대통령직을 내려놓습니다. 그는 마지막 연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연방으로 남아 있기를 간청합니다. 분열된다면 여러분은 조국을 암살한 사람이 되고, 여러분 자신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꼴이 될 겁니다." 볼리바르는 은둔에 들어갔다가 그해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47세의 젊은 나이였죠.

그의 마지막 연설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인 1831년 그란 콜롬비아는 베네수엘라, 누에바 그라다나, 에콰도르로 나뉘고 말았습니다. 볼리바르는 생전에 그란 콜롬비아의 분열을 예견하고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혁명을 위해 싸운 인간은 결국 바다에서 쟁기질했을 뿐입니다." 스페인과 싸워 쟁취한 독립이 무의미한 노력이었다는 회한이었죠. "세계사에서 3대 바보는 예수 그리스도, 돈키호테, 그리고 나다." 볼리바르가 사망 며칠 전 의사에게 남긴 말로 전해집니다.

남미합중국이란 그의 꿈은 물거품이 됐지만, 볼리바르는 남미의 영원한 '영웅'입니다. 외세에 맞서 독립을 이뤄내고, 강한 남미를 꿈꿨던 남미인이니까요.


윤서원 서울 성남고 역사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