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럭비 태어난 19세기에는 돼지 방광 부풀려 만들었대요

입력 : 2019.10.08 03:05

럭비공

타원형 럭비공은 원래 돼지 오줌보로 만든 자두모양 공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원형으로 바뀌었고, 겉에 둘렀던 쇠가죽도 없어진 지금 모양이 됐습니다.
타원형 럭비공은 원래 돼지 오줌보로 만든 자두모양 공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타원형으로 바뀌었고, 겉에 둘렀던 쇠가죽도 없어진 지금 모양이 됐습니다. /길버트럭비

지금 일본에서는 2019 럭비월드컵이 한창입니다. 럭비는 우리에게 여러모로 생소한 종목이죠. 그중에서도 달걀과 비슷하게 생긴 '럭비공'이 눈길을 끕니다. "성격이 럭비공 같다" "인생은 럭비공이야" 같은 표현처럼 달걀 같은 타원형 럭비공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특징이 있죠. 그런데 럭비공의 역사도 이리 튀고 저리 튀었답니다. 자두 모양으로 시작해서 지금의 타원형 모습으로 발전했거든요. 쇠가죽으로 덧씌웠던 공 외피도 이제는 합성고무로만 쓰이고요. 어떤 역사가 있었던 걸까요?

럭비는 1823년 영국 사립학교 '럭비 스쿨'에서 탄생합니다. 윌리엄 웹 엘리스라는 학생이 축구 경기 중 공을 손에 들고 골로 뛰어들면서 '럭비'가 시작됐죠. 당시 럭비공은 돼지 오줌보(방광)를 부풀려서 만들었어요. 오줌보에 큰 빨대를 꽂아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 부풀린 후, 그 위에 가죽을 덧대어 붙여 만들었습니다. 공기가 들어간 오줌보 자체는 동그란 모양도, 계란 모양도 아니었고, 자두 모양에 가까웠어요. 돼지 방광을 쓰다 보니 크기도 조금씩 달랐지요.

현대적인 럭비공을 발명한 사람으로는 리처드 린던(Lindon·1816~1887)을 꼽습니다. 그는 1840년대부터 럭비스쿨 인근에서 럭비공을 납품했어요. 그런데 린던 아내가 오염된 오줌보를 부풀리다가 폐병에 걸려 숨지는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린던은 좀 더 위생적이고 간단한 럭비공 제조법을 찾아나섰죠. 그는 오줌보 대신 합성고무를 부풀리고 겉에 쇠가죽을 붙이는 방식을 개발합니다. 고무를 부풀리려면 더 큰 압력이 필요했는데, 사람 대신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펌프식 공기 주입 기구도 발명했어요. 합성고무는 상대적으로 부드러워서 경기 중에 모양이 점차 타원형으로 변했습니다. 그 결과 1890년대부터는 타원형 공이 공인구가 됐죠.

다만 영광은 린던에게 돌아가지 않았어요. 린던은 자기가 발명한 럭비공 제작법을 특허 출원하지 않았어요. 1880년대부터 경쟁 회사들이 같은 방법으로 럭비공 제작에 나섰고 무한 경쟁이 벌어졌거든요. 현재 가장 대표적인 럭비공 제작사는 린던과 럭비 스쿨 럭비공 납품을 두고 경쟁했던 윌리엄 길버트의 후손들이 운영하는 회사입니다. 럭비월드컵 공인구는 1987년 제1회 대회부터 이번 대회까지 모두 길버트사에서 만든 공이었어요.

럭비공은 원래 가죽으로 덧씌웠지만, 단점이 많았어요. 비라도 내리면 가죽 부분이 물을 먹어 무거워졌고, 젖은 땅에 떨어지면 진흙이 잔뜩 묻어서 손에서 미끄러지는 등 불편함이 컸죠. 가죽이 닳아 없어져서 오래 쓰기도 어려웠고요. 그래서 1980년대부터는 합성고무 등으로 만든 공이 널리 쓰이게 됩니다.

미식축구공과 럭비공을 한눈에 구별하려면 '레이스'를 보면 됩니다. 미식축구공은 중앙에 신발끈 맨 것처럼 생긴 '레이스'가 튀어나와 있는데, 럭비공은 표면이 매끈합니다.


최의창·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