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주영의 클래식 따라잡기] 친구 같은 라이벌… 3人3色 개성으로 전성기 함께했죠

입력 : 2019.10.05 03:03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삼총사]

악보 고증에 힘썼던 바두라스코다, 지난달 국내 공연 앞두고 세상 떠나
데무스, 11세부터 빈 아카데미 다녀… 철저한 공부 덕에 흔들림 없이 연주
굴다는 재즈·푸가 접목한 곡 썼어요, 청바지 입고 무대 올라 논란 일기도

지난달 25일 또 한 명의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빈 악파 연주의 대가이자 음악학자, 선생님이기도 했던 파울 바두라스코다(Badura-Skoda)가 92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습니다. 오는 31일 국내에서 독주회가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팬들의 아쉬움은 더욱 컸습니다.

이로써 올해 4월 사망한 외르크 데무스(Demus·1928~2019), 프리드리히 굴다(Gulda·1930~2000)와 함께 '빈의 삼총사'로 불렸던 오스트리아의 피아니스트 세 사람이 모두 추억 속으로 사라지게 됐습니다. 비슷한 시기 태어나 전성기(1960~70년대)를 함께했던 이들은 실제로도 절친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연주는 그야말로 삼인 삼색의 개성으로 사랑받았죠.

파울 바두라스코다는 1927년 태어나 빈 국립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지휘를 배웠어요. 젊은 시절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세 명의 대가가 있습니다. 스승이었던 피아니스트 에드윈 피셔는 창의적인 영감으로 독일 작곡가들의 곡을 해석하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지휘자 푸르트벵글러와 카라얀은 그에게 협연 무대를 제안해 스타로 발돋움할 기회를 줬습니다.

바두라스코다는 모차르트와 베토벤 등 빈을 중심으로 활약했던 작곡가들 곡을 즐겨 쳤어요. 그는 자필 악보와 과거의 악보 판본 등을 연구하고 고증하는 작업에도 열정을 기울였고, 음악학자였던 아내 에바와 함께 '모차르트 연주법과 해석'이라는 명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또한 뛰어난 감각을 가진 실내악 연주자이기도 했습니다.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 오이스트라흐와의 음반은 지금도 사랑받는 명연이죠. 특히 슈베르트 소나타 전곡을 19세기 중반까지 많이 쓰였던 피아노의 전신 포르테피아노와 현대 피아노 연주로 모두 녹음하기도 했어요. 학생에게는 날카로운 혜안과 열정으로 가르치던 스승으로 기억됩니다.

지난달 오스트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스코다(왼쪽)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앞서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가운데)·프리드리히 굴다(오른쪽)와 함께 ‘빈의 3총사’로 불렸습니다.
지난달 오스트리아 출신 피아니스트 파울 바두라스코다(왼쪽)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는 앞서 세상을 떠난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가운데)·프리드리히 굴다(오른쪽)와 함께 ‘빈의 3총사’로 불렸습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유튜브 캡처·게티이미지

데무스는 바두라스코다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났어요. 미술사학자 아버지와 바이올리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1세부터 빈 음악 아카데미에서 피아노와 오르간, 작곡, 지휘를 공부했어요. 그렇지만 2차 대전 당시 군에 징집돼 피아니스트 경력은 1948년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그는 1956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습니다.

녹음 작업을 많이 한 데무스는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뛰어난 실내악 연주자로 사랑받았습니다.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함께 녹음한 슈베르트의 가곡, 바릴리 현악 4중주단과 연주한 브람스의 실내악 등은 여전히 인기죠. 지난 2015년 연천 DMZ 페스티벌에 내한해 바흐와 베토벤, 슈베르트의 걸작들을 연주하며 흔들리지 않는 연주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데무스는 피아니스트가 오래도록 페이스를 잃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비결로 다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째, 위대한 작곡가의 좋은 작품만을 공부할 것, 둘째, 천천히 철저하게 공부할 것, 셋째, 스스로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었습니다. 음악뿐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 실천하면 좋을 삶의 원칙인 것 같아요.

제일 어렸지만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난 굴다는 16세에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 천재성을 알렸죠. 굴다는 20세였던 1950년 뉴욕 카네기홀 리사이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솔직 담백한 해석과 강렬한 터치의 베토벤 연주가 특히 장기였죠. 그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여러 차례 녹음했고, 바흐 평균율 음반도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굴다는 클래식 분야만큼이나 '재즈'에도 애정을 가졌던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재즈 연주와 작곡에 모두 열심이었는데, 재즈에 클래식의 형식인 변주곡, 푸가 등을 접목한 다양한 작품을 썼습니다. 재즈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와 모차르트 협주곡을 재즈풍으로 재해석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죠. 굴다는 클래식 음악회에 연주복이 아닌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출연하는 파격적인 모습으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어요. 굴다는 1999년 자신이 사망했다는 가짜 뉴스를 내보내는 짓궂은 장난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는데요, 공교롭게 그 이듬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술가는 본래 고독한 존재지만, 주변의 동료나 경쟁자들이 주는 영향도 결코 무시할 수 없죠. 서로 돕고 때로는 대립하며 각자의 세계를 키워나가는 모습은 그들이 좀 더 다채롭고 흥미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헝가리의 피아니스트 삼총사]

'빈의 삼총사'의 다음 세대로는 '헝가리의 삼총사'가 있습니다. 데즈 랑키(68), 안드라스 쉬프(66), 졸탄 코치슈(1952~2016)입니다. 세 사람은 1950년대생, 헝가리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 출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한 피아니스트라는 공통점이 있죠.

랑키는 8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어요. 즈비카우 슈만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본격적으로 연주 경력을 시작합니다. 화려하면서도 직선적인 해석으로 낭만파 레퍼토리에 강점을 보이고 있죠. 2017년 내한해 서울시향과 리스트의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안드라스 쉬프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바흐 곡 전문가로, 여러 차례 내한 공연으로 국내 팬도 많습니다. 다음 달에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찾을 예정이죠.

세련된 감각과 힘과 날렵함을 겸비한 기교로 리스트, 버르토크, 드뷔시 등을 연주하며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던 졸탄 코치슈는 2016년 64세라는 아쉬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이제는 음반으로만 만날 수 있는 연주자가 되었습니다.



김주영 피아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