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숨어 있는 세계사] 1911년 쑨원 지지하던 군인들 봉기… 신해혁명 물꼬 텄죠
입력 : 2019.10.02 03:00
[우창(武昌) 봉기]
대만이 건국일로 기념하는 쌍십절… 우창 봉기 일어난 10월 10일이죠
우창 접수해 청나라로부터 독립선언… 다른 지역서도 봉기하며 혁명 본격화
이듬해 중국 최초 근대 공화정 수립
올해 건국 70주년을 맞는 중국이 10월 1일 국경절 행사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개최한다고 밝혔어요. 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죠. 2차 대전이 끝나고 마오쩌둥과 공산당, 장제스와 국민당은 1946년부터 1950년까지 중국 본토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에 돌입했어요. 마오쩌둥은 1949년 승리가 확실해지자 건국을 선포한 건데요,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국경일입니다.
대만으로 후퇴한 장제스와 국민당에 이날은 뼈아픈 날이죠. 대신 대만은 '쌍십절'을 중화민국의 건국일로 기념하고 있어요. 중국 청나라를 무너트린 신해혁명이 1911년 10월 10일 시작됐거든요. 바로 '우창(武昌) 봉기'입니다.
◇망해가는 청나라
청나라는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며 나라가 엉망이었어요. 1901년부터 정치·군사·교육·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추진했지만 부정부패 등으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대만으로 후퇴한 장제스와 국민당에 이날은 뼈아픈 날이죠. 대신 대만은 '쌍십절'을 중화민국의 건국일로 기념하고 있어요. 중국 청나라를 무너트린 신해혁명이 1911년 10월 10일 시작됐거든요. 바로 '우창(武昌) 봉기'입니다.
◇망해가는 청나라
청나라는 두 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며 나라가 엉망이었어요. 1901년부터 정치·군사·교육·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추진했지만 부정부패 등으로 실패로 돌아갑니다.
- ▲ 작년 대만 총통 관저 앞에서 열린 '쌍십절' 기념행사입니다. 대만은 신해혁명이 시작된 10월 10일을 건국일로 기념합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0월 16일이 될 수도 있었던 '쌍십절'
우창에는 신식 무기 사용법을 훈련받은 정예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대다수 장교와 병사가 쑨원의 혁명 이념에 공감하고 있었어요. 1만5000명의 병사 중 3분의 1에 달하는 5000명이 '문학사' '공진회' 등 쑨원을 지지하는 혁명 조직에 가입해 있었다고 해요.
예정대로 16일에 거사를 일으켰다가는 그전에 모두 목이 달아날 판이었습니다. 우창에 있는 혁명 지도부는 10일 저녁 500명의 공병대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킵니다. 혁명군은 우창 무기고를 탈취하고 도시 접수에 나섰어요. 호광총독(현재의 후베이성·후난성을 합친 지방 장관)이 봉기 소식을 듣고 관리들과 곧바로 도망치면서 혁명군은 우창을 점령했어요.
◇중화민국 수립은 1912년 1월 1일
혁명군은 12일에 우창과 함께 '우한 3진'이라 불리는 한커우와 한양도 점거합니다. 그리고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선언합니다. 여기 호응한 혁명 세력이 중국의 24개 성 중 17개 성에서 각기 무장봉기를 일으키면서 신해혁명이 본격화합니다.
당시 미국에 머무르던 쑨원은 소식을 듣고 귀국합니다. 혁명 세력은 이듬해인 1912년 1월 1일 쑨원을 임시 대총통으로 선출하고 중화민국 수립을 선언해요. 그렇지만 건국 기념일로는 '쌍십절'을 기념해요. 중국 최초 근대 민주 공화정을 수립하게 한 신해혁명의 상징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중국 건국일 국경절은 10월 1일… 쌍십절에도 기념행사 열어요]
중국 공산당도 신해혁명을 중국 현대사의 시작으로 봅니다. 쑨원은 혁명의 선구자로 존경하죠. 그래서 중국 본토에서도 쌍십절을 '신해혁명기념일'이라고 부르면서 정부 주도로 기념행사를 엽니다.
그렇지만 10월 1일 국경절 같은 중요한 날로 여기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는 공산당의 공산혁명이 더 중요할 수밖에요. 신해혁명이 기념일이지만 '빨간 날'은 아닌 걸 봐도 알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