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6·25서 아들 잃었지만 의연함 지킨 유엔군 사령관
[밴 플리트]
맥아더·리지웨이 후임으로 참전, 야포 사격 5배 늘려 中 인해전술 저지
공군 폭격기 몰던 아들, 임무 중 실종… 소식 듣고도 기존 작전 수행에 집중
전역 후 한국 관련 비영리단체 설립, 회장 맡아 한미 관계 발전에 큰 역할
◇교범보다 5배 많은 사격으로 중공군 저지
제임스 밴 플리트(1892~1992)는 6·25전쟁 당시 미8군과 유엔군 사령관을 지낸 장군이었고, 1967년 미국 최초의 한국 관련 비영리 단체인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초대 회장이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장교로서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작전에서 활약했습니다. 밴 플리트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4월 한국에 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와 매슈 리지웨이 장군의 후임으로 유엔군 사령관을 맡게 된 것이지요. 그는 중공군의 막대한 물량 공세에 맞서기 위해 '밴 플리트 포격'이란 전술을 창안했습니다. 포병의 탄약 보급률을 규정의 5배로 늘려 강력해진 화력으로 중공군의 침공을 막아낸 것이지요. 이것을 알게 된 미국 의회에선 '과연 이렇게 탄약을 많이 써도 되는 것이냐'며 의문을 제기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밴 플리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그 사람들한테 여기 와서 적군 시체하고 포로들 좀 보라고 해!"
◇"내 아들보다 작전이 중요하다"
밴 플리트는 6·25전쟁 중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몸소 보여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밴 플리트가 한국에 있을 때 그의 아들 지미(제임스 밴 플리트 주니어)도 공군 중위로 참전했어요. 그는 어머니 헬렌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아버지는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말고, 제 승무원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 ▲ /그림=안병현
1952년 4월 밴 플리트는 이런 보고를 받습니다. "야간 임무 수행을 위해 출격한 지미 중위가… 귀환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스물일곱 살의 지미가 B-26 폭격기로 평북 지역의 적 시설을 폭격하러 갔다가 실종된 것이었습니다. 수색작전은 성과가 없었고, 참모들은 "수색을 확대해 시신을 찾자"고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밴 플리트는 의연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지요. "내 아들을 찾는 것보다 다른 작전이 중요하다."
밴 플리트는 부활절을 맞아 실종 군인 부모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모든 부모님이 저와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다하고 있습니다. 벗을 위해 자기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
밴 플리트는 자신의 자식에게 남의 자식과 똑같은 국가의 의무를 지게 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물론 한국 역사를 빛낸 많은 인물에서도 역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7년 동안 주요 해전마다 장남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의병장 고경명은 아들과 함께 전장을 누비다 동반 전사했지요. 심지어 이순신 장군에 비해 '무능한 장수'로 인식됐던 원균도 칠천량 해전에서 아들과 함께 백병전을 벌이다 전사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 의병장으로 순국한 정환직·정용기 부자 등 이런 예는 수두룩합니다.
최근 들어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던 지도층 인사가 정작 자기 자식 문제에서 물의를 빚는 일이 일어나자 일각에서는 '부모 된 입장에선 자식 일에 좀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으냐'고 옹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밴 플리트, 이순신은 물론 원균조차도 이 말을 듣는다면 뭐라고 할까요?
☞밴 플리트상이란?
1953년 퇴역한 밴 플리트는 1957년 미국 최초의 한국 관련 비영리단체 ‘코리아 소사이어티’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맡았습니다. 이후 이 단체는 한국과 미국의 우호 증진에 큰 역할을 했어요.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밴 플리트가 100세로 별세한 지 3년 뒤인 1995년부터 ‘밴 플리트 상’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어요. 한·미 우호 증진의 공로를 인정받아 전 미국 대통령인 지미 카터와 조지 W. 부시, 한국 기업인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등이 이 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