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주은의 미술관에 갔어요] 1차대전 폐허 딛고 피어난 모던 디자인, 올해 100살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展]
1919년 설립된 건축·디자인학교… 나치가 학교 문 닫기까지 14년 동안
철제 의자·직사각형 저장용기 등 혁신·실용적 디자인 이끌었죠
주변에 있는 가구나 전기제품을 눈여겨보세요.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고 얇고 가볍고 쓸데없는 장식이 없이 깔끔한 게 특징이지요. 그런데 20세기 이전 사람들에게 멋진 디자인이란 장식이 근사하다는 뜻이었어요. 사람들은 언제부터 단순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을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유럽 옛 궁전에 있는 왕의 의자를 떠올려볼까요. 왕의 높은 지위와 권위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의자는 다리 부분에 조각장식이 많고 등받이에도 금을 입힌 청동장식이 두툼하게 둘려 있지요. 자리를 바꿔 앉고 싶어도 혼자서는 옮길 수조차 없을 만큼 무겁기도 해요. 디자인은 특권층의 전유물이었죠.
그런데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편리하게 쓸 수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라고 가르쳤던 건축·디자인 학교가 있었습니다. 독일의 바우하우스(Bauhaus)예요. 1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던 독일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Gropius·1883~1969)는 "함께 미래의 새로운 구조를 꿈꾸고, 인식하고, 창조하자"며 1919년 이 학교를 설립합니다.
올해는 바우하우스가 문을 연 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바우하우스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행과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전 세계에서 펼쳐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금호미술관에서 내년 2월 2일까지 '바우하우스와 현대생활'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든 의자, 책상, 조명 제품 등을 볼 수 있어요.
바이마르에서 문을 연 바우하우스는 새 학교 건물을 데사우에 지어 이동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렇지만 1933년 당시 독일을 지배했던 나치는 '바우하우스 디자인은 게르만적이지 않다'며 강제로 문을 닫게 합니다. 14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바우하우스의 교수와 학생들은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단순하고 아름다운 형태의 일상용품을 만들며 세계의 이목을 끕니다. 그리고 이 디자인들은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현대 디자인의 3가지 기본 틀을 만들어 놓았어요.
- ▲ ①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 ‘안락의자 MR534’, 1927. ②마르셀 브로이어, ‘탁자 세트 B9’, 1925~26. ③크리스티안 델, ‘론델라-폴로 책상 조명’, 1928. ④빌헬름 바겐펠트, ‘쿠부스 저장용기’, 1938. /금호미술관
첫째는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재료를 탐구하는 자세입니다. 사진 1은 안락의자 모습을 하고 있지만, 기존과 달리 강철파이프를 재료로 만들었죠. 가구는 보통 나무로 만든다는 상식을 깨고 색다른 재료를 시도한 겁니다. 이 의자를 디자인한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1886~1969)는 건축가로 바우하우스의 마지막 교장이었어요. 단지 새롭다고 강철파이프를 쓴 게 아닙니다. 그는 견고한 강철파이프를 쓰면 굳이 의자의 뒷다리를 만들어 받쳐주지 않아도 앉는 사람의 몸무게를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데 착안했어요. 이후 강철파이프는 유연하게 휘면서 강하다는 특성과 세련미를 인정받아 가구 제작에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이 안락의자는 20세기 디자인 혁신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답니다.
두 번째 특징은 공간과 비용을 절약하는 효율적인 디자인입니다. 방은 비좁은데, 비싸고 큰 가구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우습겠죠. 사진 2를 보세요. 마르셀 브로이어(Breuer·1902~1981)가 제작한 탁자인데, 크기가 각각 다른 4개의 탁자가 포개져 있습니다. 브로이어는 바우하우스의 초기 졸업생으로, 자전거에 주로 사용되던 강철파이프를 가구 재료로 써보자고 처음 제안했던 사람입니다. 이 탁자는 필요에 따라 모두 펼쳐놓을 수도 있고, 평소에 사용하지 않을 때엔 겹쳐 놓아 공간을 절약할 수 있게끔 디자인됐죠.
사진 3은 익숙한 모양의 책상 조명기구입니다. 금속 기술자이자 공예가인 크리스티안 델(Dell·1893~1974)이 디자인했어요. 델은 이렇게 간단한 모양의 조명기구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어요. 높낮이 조절이 가능해서 눈부심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어요. 기능적으로도 뛰어나고 가격도 저렴했던 이 전등의 모양을 딴 각종 '스탠드'는 지금까지도 학생은 물론 공학자나 설계자 등 책상에서 작업하는 이들에게 인기랍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의 세 번째 특징은 조립이 가능한 네모난 단위(module)를 사용하였다는 점입니다. 사진 4는 음식을 담아두는 유리로 된 저장용기입니다. 빌헬름 바겐펠트(Wagenfeld·1900~1990)가 디자인했어요. 그릇이나 접시는 보통 둥근 모양이라 선반에 보관할 때 공간을 많이 차지했죠. 네모 형태 그릇은 위로도 쌓을 수 있고, 옆으로도 어느 방향이나 붙일 수 있어요. 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 음식의 내용물도 훤히 볼 수 있어, 일일이 뚜껑을 열어볼 필요도 없답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이너들은 예술과 공학이 만나야 한다고 믿었어요. 그들의 신념은 사람들의 생각과 안목을 바꾸어 놓았고, 그들의 디자인은 현대인의 생활공간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발터 그로피우스·미스 반데어로에… 근대건축의 거장 2명이 이곳 출신]
바우하우스는 디자인으로 유명하지만, 주축은 건축가들이었죠. 바우하우스를 설립한 발터 그로피우스와 마지막 교장 루트비히 미스 반데어로에는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프랑스의 르코르뷔지에와 함께 '근대건축 4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 ▲ /바우하우스 데사우 재단
그로피우스는 1925년 데사우의 바우하우스 교사〈사진〉를 지었습니다. 4개의 직육면체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직선과 유리, 수직과 콘크리트 등 모든 것이 바우하우스 건축의 결정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미스 반데어로에는 1920년대에 철골 마천루 아이디어를 내놓았고, 1958년에는 현대적 고층 건물의 표본으로 여겨지는 뉴욕 '시그램 빌딩'을 건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