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김경일의 심리학 한토막] 창의성 발휘하려면… '어떻게'보다 '무엇'을 먼저 고민해야

입력 : 2019.09.25 03:00

창의성과 상황

학교에서는 창의적 인재를 키우려고 하고, 기업은 창의적 인재를 뽑으려고 합니다. 심리학자와 교육학자들이 여러 창의성 검사를 만들어 창의성을 평가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죠. 그런데 최근 연구 흐름을 보면 '창의적 인재'가 있다기보다는 '사람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상황이 있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여러 심리학자가 반복해온 실험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초등학생 대상 실험을 소개하지만, 이 결과는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것이라는 말씀부터 먼저 드리겠습니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면 같은 퍼즐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옵니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면 같은 퍼즐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초등학교 한 반을 찾아 학생에게 수십 개의 다양한 물체를 줍니다. 각각의 물체는 모양과 크기가 서로 달라요. 직육면체, 원통 같은 일반적인 모양은 물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 모습을 한 물체도 있어요. 이것으로 '창의적인 걸 만들어보라'고 할 텐데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합니다.

A반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앞에 있는 물체 중 각자 마음에 드는 것 5개를 골라 새로운 걸 만들어 보세요." 학생들은 대부분 직육면체 같은 일반적 물체를 고릅니다. 특이한 물체를 집는다면 뭔가 만들기가 부담스럽겠죠. 만든 물건 역시 평범합니다. 대부분 집이나 자동차 혹은 기차 같은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왜 그럴까요? 수단(물체 5개로)과 목표(신기한 걸 만들라)를 먼저 생각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때 가장 평범해집니다.

같은 학년 B반에 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에 드는 물체를 5개씩 고르세요." 그럼 학생들은 독특한 물체도 부담 없이 골랐습니다. 학생들이 물체를 다 고르고 난 뒤 "여러분이 고른 5개의 물체를 가지고 새로운 걸 만들어 보세요"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은 예상치 못했던 목표를 받아 들고 당황하지만, 학생들이 만들어낸 작품은 첫 번째 경우보다 훨씬 더 새롭고 기발합니다. 수단과 목표가 분리됐기 때문이죠.

C반에서는 수단을 제시하지 않고 목표부터 던집니다. "어떤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싶으세요?"라고 먼저 물어보기부터 하는 것이죠. 학생들은 별의별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합니다. 그러고 나서 앞 반들에서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물체들을 건넵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물체 중 5개를 골라 아까 만들고 싶었던 물건을 만들어보세요"라고 합니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도 있어요. 그렇지만 C반 학생들이 투덜대며 만들어 낸 결과물은 심사위원도 놀랄 정도로 창의적인 것이 많았어요.

이 실험 결과는 개개인이 얼마나 창의적인지보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더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또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 같은 현실적인 여건부터 고민하면 창의적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도요.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