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최의창의 스포츠 인문학] 올해 100회 맞은 '국내 올림픽', 6·25전쟁 중에도 열려 3000명 참가
입력 : 2019.09.24 03:00
전국체육대회
다음 달 4일부터 일주일 동안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열립니다. 전국체전이라 흔히 부르는 이 대회는 해마다 10월에 전국의 17개 시·도를 순회하면서 40여개 종목에서 3만여명이 참가하는 '국내 올림픽'입니다.
그런데 올해로 100회라면 1920년 제1회 경기가 열렸다는 뜻이겠죠. 대한체육회는 1920년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제1회 전국체육대회로 규정하고 있어요.
그런데 올해로 100회라면 1920년 제1회 경기가 열렸다는 뜻이겠죠. 대한체육회는 1920년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제1회 전국체육대회로 규정하고 있어요.
- ▲ ①제1회 전국체육대회인 '전조선야구대회'에서 독립운동가 이상재(오른쪽) 선생이 시구하는 모습. ②해방 후 남북이 마지막으로 함께한 1945년 전국체육대회. ③전국체육대회에 처음으로 성화 봉송이 도입된 1955년 대회 성화 점화 모습. /대한체육회
1938년 일제가 조선체육회를 해산하면서 1945년 해방까지 대회가 열리지 않아요. 해방 이후에는 '자유해방경축 전국종합경기대회' '조선올림픽대회' 등으로 이름이 바뀌다가 1948년 대회부터 '전국체육대회'라는 지금 이름으로 정착합니다. 시·도 대항전 성격을 갖춘 것도 이즈음부터입니다.
6·25전쟁도 전국체육대회를 멈추지는 못했어요. 전쟁이 막 터진 1950년에는 열리지 못했지만, 1951년 광주에서, 1952년 서울에서 각각 2200명과 3000명이 참가해 경기를 치렀어요. 1951년 광주대회 마라톤에서는 최윤칠이 2시간25분15초로 당시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달성합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한국 사회가 발전하면서 전국체육대회도 보다 본격적인 종합체육대회 성격을 갖춰갑니다. 1953년 재일동포선수단을 시작으로 재외동포들의 참여가 허용됐고, 1955년 이상백 선생의 제안으로 강화도 참성단에서 성화를 채화하기로 합니다. 초대 성화 봉송 최종 주자는 손기정옹이었죠. 1996년에는 대회 마스코트가 최초로 채택됩니다.
대한체육회는 대회가 열렸든 안 열렸든 1920년부터 전국체육대회를 매년 1회씩 치렀다고 가정합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으로 대회를 11차례 건너뛰었지만, 여전히 올해가 100회인 이유죠.
전국체육대회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던 한국인을 단합시켜준 유서 깊은 대회입니다. 그렇지만 한국 프로 스포츠가 발전하고, 시청자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전국체육대회에 대한 관심은 낮아졌어요.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길 기원해봅니다. 22세기까지 또 다른 한 세기를 거뜬히 이어나갈 종합체육대회로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