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이동귀의 심리학이야기] 고난 이겨내는 마음의 힘… 따뜻한 사랑 받으면 길러지죠

입력 : 2019.09.20 03:00

[회복 탄력성(resilience)]
열악한 환경서 자란 201명의 삶 추적
사회 적응 못할 거라 예상했지만 3분의 1은 바르게 자라고 성적도 우수

관심·돌봄을 제공한 사람이 있어 회복 탄력성이 높기 때문이었죠
이외에도 종교·배우자 등으로 회복

어렸을 때 가정폭력, 심각한 가난 등을 겪은 아이는 청소년기에 우울증을 겪을 위험성이 높다고 합니다. 2015년 세라 젠슨(Jenson) 등은 6세 이전에 이런 충격을 받은 유아 494명을 추적하여 약 20년이 지난 후 이들의 뇌를 단층 촬영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이런 사람들은 뇌에서 감정 조절과 스트레스 관리 등을 담당하는 부위의 부피가 줄어들면서 불안이나 우울을 더 많이 느꼈다고 해요. 그렇다면 어려서 역경을 당한 아이들은 모두 불행해진다는 걸까요? 이 문제를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한 심리학자 에미 워너(Warner)와 루스 스미스(Smith)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하와이 카우아이 섬 아이들

카우아이는 하와이의 북서쪽에 있는 섬입니다. 1950년대 섬 주민 대부분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받았어요. 알코올중독자 비율, 범죄율도 다른 지역보다 크게 높았습니다. 워너와 스미스는 1955년 카우아이에서 태어난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30년 동안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추적 연구를 진행했어요. 698명이 참여했는데, 성장기에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자라났을수록 학교와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고 약물 남용이나 정신적인 문제로 고통받거나 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많았어요.

회복 탄력성이 뛰어난 사람은 불행을 극복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복 탄력성이 뛰어난 사람은 불행을 극복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연구 결과 어렸을 때 단 한 사람에게라도 따뜻한 돌봄을 받았던 아이의 회복 탄력성이 더 뛰어난 것으로 밝혀졌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
그런데 연구 참여자 중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였던 201명의 성장 과정을 추적해 본 연구자들은 놀라운 아이들을 발견합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가정불화가 심하고, 부모 중 한 사람 혹은 둘 다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극빈 가정에서 자라났어요. 그런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72명은 학업 성적도 우수했고,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았어요. 미국 대학입학시험(SAT)에서 상위 10% 안에 든 사람도 있었죠. 이 3분의 1의 아이들은 왜 남달랐던 걸까요.

역경에 굴하지 않는 '마음의 힘'

연구자들은 이 아이들이 극심한 역경 속에서도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힘을 '회복 탄력성(resilience)'에서 찾았어요. 이 말은 심리학에서 주로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뜻해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그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용하는 능력이기도 하죠. 간단히 말하자면 '역경 속에서도 고무공처럼 튀어오르는 마음의 힘'을 뜻합니다. 다른 말로는 '적응 유연성'이라고도 해요.

이 72명이 유독 회복 탄력성이 뛰어났던 이유로 연구자들은 '따뜻한 돌봄을 제공해 준 사람'을 꼽았어요. 그 사람은 부모나 조부모, 때로는 학교 선생님이었죠. 중요한 것은 단 한 명이라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 있을 때 아이가 비뚤어지지 않고 잘 자라났고, 회복 탄력성이 뛰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어렸을 때 상처, 커가며 아물어

1955년 워너와 스미스가 시작한 카우아이 섬 연구에 참여했던 참가자들도 이제 60대가 됐습니다. 이 참가자들이 40대가 되었을 때 연구자들이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고위험군 201명 중 앞서 언급된 회복 탄력성이 훌륭했던 72명 이외에도, 성인이 되고서 교육을 잘 받거나, 종교단체에 참여하거나, 안정적인 배우자를 만나는 등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만난 사람들은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고 해요. 지금도 카우아이 섬 연구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로리 매커빈(McCubbin) 교수는 회복 탄력성을 일련의 성장 과정이라고 봤어요. 개인이 역경으로부터 어떠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자신을 믿는 힘, 자기 효능감]

역경을 딛고 잘 자란 아이들은 회복 탄력성 말고도 다른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남들보다 높았다는 겁니다. 자기 효능감이란 자신이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걸 이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카우아이의 아이 중 일부는 어렸을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왔던 경험이 있었어요. 생계를 책임지며 자기 효능감이 높아졌고, 그 결과 회복 탄력성도 뛰어났다고 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