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6억년 전 등장해 돌연 사라진 동물들… 끝없는 진화와 도태

입력 : 2019.09.19 03:05

[에디아카라 동물군]

선캄브리아 시대 끝날 무렵 등장해 1억년 동안 지구에 살다 자취 감춰
뼈나 껍데기 없는 유연한 몸체로 지금 생물들과 전혀 다른 생김새
고생대에 다세포생물 나왔다는 통설… 에디아카라 화석 발견으로 깨졌어요

이달 초 중국과학원이 약 5억5000만년 전에 살던 기다란 절지동물 '이링기아 스피시포르미스'가 남긴 화석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어요. 절지동물은 곤충이나 가재처럼 몸이 여러 개의 마디로 이루어져 있고 뼈나 척추가 없는 생물을 가리켜요.

이 생물은 선캄브리아 시대(46억년 전~5억4000만년 전)가 끝나기 직전 마지막 1억년 동안 지구에 나타난 '에디아카라 동물군'에 속해요.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어느 순간 지구상에 갑자기 등장했다가 지금은 지구상에 거의 남아있지 않은 신비로운 동물들이에요. 약 6억년 전 돌연 나타난 에디아카라 동물군의 진화를 함께 알아볼까요.

갑자기 사라진 에디아카라 동물군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관련 화석이 한꺼번에 나온 오스트레일리아 남부 에디아카라 언덕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이 생물들이 발견되는 선캄브리아 시대 막바지 시간대인 6억3500만년 전~5억4000만년 전까지를 특별히 '에디아카라기'라고 부릅니다.

에디아카라 동물군 화석은 19세기부터 발견되기 시작했지만, 학계에서 인정받는 데 100년이 넘게 걸렸어요. 워낙에 기존 통념을 흔드는 발견이었거든요. 그때까지 학자들은 선캄브리아 시대엔 다세포생물이 거의 없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에디아카라 동물군 그래픽
/그래픽=안병현

지구는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과 함께 약 46억년 전 탄생했는데, 그로부터 약 40억6000만년에 걸쳐 선캄브리아 시대가 지속됐어요. 이 시기 단세포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후 고생대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다세포생물이 출현했다고 보는 게 통설이었어요. 그런데 선캄브리아 시대에 속하는 에디아카라 동물군 화석을 보면, 지금 생물과 생김새는 많이 다르지만 분명히 '다세포동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죠.

또 에디아카라 동물군 화석 생김새가 지금 동물과 크게 달랐던 점도 과학자들을 고민에 빠뜨렸어요.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대부분 암석에 납작하게 새겨진 흔적으로 남아 있어요. 언뜻 보면 달에 남아있는 우주비행사의 발자국 같기도 하고, 잎맥이 잔뜩 있는 나뭇잎 형상 같기도 해요. 뼈나 껍데기가 없고 유연한 몸체만 갖고 있던 이 생물들이 세계 곳곳에 화석을 남긴 것도 신기하지만, 그 형태가 지금의 생물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도 놀라웠지요. 그런데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선캄브리아 다음 시기인 고생대가 되면서 갑자기 사라져 버려요.

새롭게 나타난 버제스 셰일 동물군

대신 또 다른 기기묘묘한 생물들인 '버제스 셰일(Burgess Shale) 동물군'이 등장합니다. 이 동물군은 캐나다 버제스산의 셰일(이암판)에서 발견돼 이런 이름이 붙었어요.

버제스 셰일 동물군에는 눈이 다섯 개에 코끼리 코 같은 입을 가진 '오파비니아'도 있고, 위아래, 앞뒤가 확실치 않은 '할루키게니아'도 있어요. 척추의 전 단계에 해당하는 기관인 '척삭'을 가진 '피카이아'도 이 시기에 등장했답니다.

에디아카라기가 끝나고 고생대로 넘어간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갑자기 여러 가지 다세포생물이 한꺼번에 번성하면서 먹이나 서식지 경쟁이 벌어지고 공멸했다는 학설이 있는가 하면, 에디아카라기에 살았던 생물들이 적응하지 못해 사라졌다는 학설도 있어요. 새로운 포식자가 등장해 에디아카라기 동물들이 버티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죠.

에디아카라 동물군은 1억년에 못 미치는, 지구 역사에서는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자신들만의 낙원을 누린 뒤 자취를 감췄어요. 버제스 셰일 동물군도 마찬가지로 어느 시점에 갑자기 사라져 버렸죠. 만약 이 동물군 중 하나라도 제대로 살아남아 진화를 계속했다면 현재 지구상의 생물들 모습은 우리가 아는 것과 아주 많이 달랐을 거예요. 온몸이 납작하고 투명하거나 눈이 다섯 개인 인간들이 거니는 도시를 상상해 보세요.

어쩌면 지금도 바다 깊숙한 곳에서, 우리 눈이 닿지 않는 정글 속 어딘가에서 지구의 새로운 '진화 실험'이 펼쳐지고 있을지 몰라요. 심해 생물들의 놀랍고도 기묘한 생김새와 능력, 매년 꼭 발견되는 열대우림 신종들의 모습은 지구 곳곳의 진화 실험실이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생김새 특이해 식물로 오해받기도]

신비로운 에디아카라 동물군에서는 식물인지 동물인지도 분간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화석 모양을 봤을 때 널따란 나뭇잎이나 발자국처럼 생긴 ‘디킨소니아’가 대표적입니다. 디킨소니아를 두고 해파리의 선조다, 동물이 아니라 식물이다 등등 여러 학설이 분분했죠. 해면동물이란 설도 있었고요. 해면동물은 스펀지처럼 생긴 동물을 뜻해요.

마침내 지난해 디킨소니아는 ‘동물’로 확실히 밝혀졌습니다. 조첸 브룩스 국립호주대 교수 연구팀이 러시아에서 발견된 5억5800만년 전의 디킨소니아 화석에서 콜레스테롤 성분을 찾아냈거든요. 콜레스테롤은 동물의 세포막을 구성하는 성분으로 식물에는 없어요. 이 연구는 ‘사이언스’가 뽑은 2018년 10대 과학 뉴스 중 하나로 선정됐어요.



김은영·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