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디자인·건축이야기] 서울올림픽, 한국 디자인 발전시킨 결정적 계기됐대요

입력 : 2019.09.17 03:05

1988년 서울올림픽 디자인

호돌이
지난 6일 원로 디자이너 조영제(84) 서울대 명예교수가 별세했습니다. 그는 과거 OB맥주, 신세계백화점, 한국외환은행, 동아제약 등 수많은 기업 로고를 디자인했어요. 대한민국 디자인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1988년 서울올림픽 디자인을 총괄하기도 했죠. 오늘은 1988년 서울올림픽 디자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말씀드릴게요.

우리나라는 일본 나고야를 가까스로 제치고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유치했어요. 준비할 일이 한둘이 아니었죠. '한강의 기적'을 세계에 자랑할 최고의 기회였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해당 올림픽을 상징하는 휘장인 엠블럼, 마스코트, 공식 포스터 등 올림픽의 '얼굴'이 되어줄 디자인 분야에서 어려움이 컸어요. 전 세계 사람들은 중계를 통해 계속 접하는 올림픽 디자인으로 개최 도시와 개최국의 인상을 기억하는데, 당시 한국에서 국제적 규모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고(故) 조영제 교수는 정부에 디자인전문위원회를 만들자고 제안하고, 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1981년부터 1988년까지 7년 동안 위원장을 맡아 서울올림픽 디자인을 총괄했어요. 이를 통해 우리가 아는 삼태극 형상의 엠블럼과 마스코트 호돌이〈작은 사진〉가 탄생했죠.

서울올림픽 엠블럼은 2017년 작고한 양승춘 서울대 명예교수가 삼태극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었어요. 예로부터 널리 사용돼 전통미를 잘 보여주는 삼태극을 현대적으로 리뉴얼했죠. 세면대에서 물이 휘휘 감기며 빠지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에 반영한 일화가 유명해요. '아이러브뉴욕(I♥NY)'을 만든 미국 디자인의 거장 밀턴 글레이저도 역대 올림픽 엠블럼 중에서 삼태극 엠블럼이 뛰어난 편이라고 평가했죠.
삼태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1988년 서울올림픽 엠블럼(사진 왼쪽),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CG를 활용해 만든 올림픽 공식 포스터(사진 오른쪽).
삼태극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1988년 서울올림픽 엠블럼(사진 왼쪽), 당시 최신 기술이었던 CG를 활용해 만든 올림픽 공식 포스터(사진 오른쪽).

서울올림픽 하면 마스코트 '호돌이'를 빼놓을 수 없죠. 서울(Seoul)을 상징하며 S자로 나풀거리는 상모를 쓰고 있는 호돌이는 디자이너 김현이 만들었어요. 서울올림픽 엠블럼과 마스코트는 당시 국제적인 흐름이었던 모더니즘 양식으로 전통 요소를 단순하게 정리한 결과예요.

조영제 교수는 디자인 총괄뿐 아니라 올림픽 공식 포스터를 만들기도 했어요. 올림픽 오륜 마크에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오는 이미지인데요, 국내 최초로 컴퓨터그래픽(CG)을 활용했어요. 당시 국내에서는 CG 작업이 어려워서 실제 제작은 외국에 맡겼다고 해요. 덕분에 CG 불모지였던 한국에 첨단 기법을 소개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책 '한국의 디자인'을 쓴 김종균은 "서울 올림픽을 준비하며 실력을 쌓은 당대 디자이너들이 그 노하우를 실무에 적용하면서 한국 디자인의 수준이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했어요. 이후 디자인에 대한 인식도 크게 개선되면서 대형 국책 사업을 시작할 때 디자이너들이 기획단에 참여하게 됐답니다.


전종현 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