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종양 먹어 치우고 뇌혈관 뚫어주는 '초소형 의사'

입력 : 2019.09.12 03:00

[소프트 로봇]
뇌혈관에 가늘고 부드러운 실 넣어 약물 투입하고 혈관 뚫는 로봇 개발
겉은 90%가 물 성분인 하이드로겔

몸속 헤엄쳐 종양 먹는 해파리 로봇… 다리에 붙은 자석 힘으로 움직여
내장 배터리·전선 없이도 작동

여전히 많은 사람은 '로봇' 하면 '로봇 태권 V'처럼 강철로 만들어진 인간형 물체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사실 로봇을 꼭 쇠로만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어요. 굳이 사람을 닮게 만들 이유도 없고요.

실제로 쇠가 아닌 부드럽고 탄력 있는 재료로 만든 로봇이 계속해서 연구·개발되고 있습니다. 일부 로봇은 실제로 쓰이고 있기도 하고요. 겉 재질이 부드럽다고 이런 로봇을 '소프트 로봇'이라고 부릅니다. 최근에는 의료 부문에서 소형 소프트 로봇이 특히 주목받고 있어요.

◇의학 분야에서 활약하는 '소프트 로봇'

소프트 로봇은 의학 분야에서 이미 활약하고 있습니다. 몸속 정확한 위치에 약물을 전달한다거나 피부를 절개하지 않고 수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죠. 단단한 쇠는 사람의 몸에 상처를 입힐 수 있지만 부드러운 소프트 로봇은 그런 위험이 적어 각광받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과학] 종양 먹어 치우고 뇌혈관 뚫어주는 '초소형 의사'
/그래픽=안병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은 최근 뇌혈관에 밀어 넣는 실 모양의 소프트 로봇을 개발했다고 발표했어요. 가느다란 뇌혈관 안에 들어갈 수 있다니 얼마나 가늘지 짐작하실 수 있겠죠? 니켈과 티타늄 소재로 뼈대를 만들고, 90%가 물 성분인 합성 물질 '하이드로겔'로 겉을 둘렀어요.

연구팀은 "로봇 실을 통해 혈전을 줄여주는 약물을 투입하거나, 혈전이 막고 있는 부분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이 로봇이 상용화되면 뇌혈관 수술이 더 쉽고 안전해질 거라고 해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도 해파리와 닮은 소프트 로봇을 개발했어요. 해파리 모양으로 생겼는데, 젤리처럼 부드러운 머리와 8개의 팔을 갖고 있어요. 이 로봇은 팔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헤엄칩니다. 연구팀은 앞으로 개발이 진척되면, 이 로봇이 살아 있는 생명체의 체액 속에서 헤엄치면서 약물을 전달하거나 종양을 먹어치울 수 있는 기능을 갖출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어요.

◇전선이나 내장 배터리 없이도 움직여요

소형 소프트 로봇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동력입니다. 아무래도 내장 배터리를 장착하면 크기가 커지기 마련이라 연구진들은 새로운 구동 방식을 찾고 있어요.

최근 자석의 힘을 이용해서 정교하게 움직임을 제어하는 기술이 개발됐습니다. 전기가 흐르면 자기장이 생겨요. 로봇 자체에 내장된 배터리가 없더라도, 바깥에서 자기장을 만들어 세기와 방향을 바꾸면 로봇을 조종할 수 있다는 원리죠.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해파리 로봇은 팔의 안쪽에 자석 조각이 있고 겉은 탄력 있고 부드러운 재료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약한 자기장을 위 방향으로 걸면 로봇의 팔이 느리게 위로 구부러지고, 강한 자기장을 아래 방향으로 걸면 로봇의 팔이 빠르게 아래로 구부러집니다. 자기장을 통해 로봇이 헤엄을 치도록 조작이 가능합니다. 이런 움직임을 통해 물에서 구슬을 건져내고, 모래같이 작은 구슬 속으로 파고들어가서 숨는 움직임까지 가능합니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해파리 로봇은 아직 몸 안에 넣고 정밀한 작업을 하는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MIT의 실 모양 로봇은 자기장을 이용해 움직이면서 뇌혈관 수술을 거뜬하게 해냅니다.

동력 없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방법들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하버드대와 칼텍 공동연구팀은 열을 가하면 형태를 바꾸는 로봇을 만들었어요. 이 로봇은 서로 다른 온도에서 종이처럼 차례로 접히는 소프트 경첩을 가지고 있어요. 경첩이 어떤 온도에 어느 정도 반응해 얼마나 접힐지 등을 조정하면 온도에 따라 원하는 모양으로 변하도록 프로그래밍이 가능합니다.

연구진이 만든 이 소프트 로봇은 길이 8㎝, 너비 4㎝의 얇은 종이 같이 생겼는데, 200도 정도의 열을 가하면 경첩이 차례로 접혀서 5각형의 바퀴로 변해 굴러가기 시작합니다. 앞으로는 훨씬 더 다양한 동작을 하도록 프로그래밍이 가능할 거라고 연구팀은 기대하고 있어요. 소프트 로봇의 등장으로 로봇은 점점 더 생명체와 닮은 모습이 되고 있어요.


[종잇장처럼 얇은 3㎝ 길이 로봇… 1초 만에 60㎝씩 성큼성큼 걷죠]


1초 만에 자기 몸길이의 20배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하고, 자기 무게보다 6배 무거운 짐을 무리 없이 나르는 소프트 로봇도 있습니다.

미국 버클리대와 중국 칭화대 공동 연구팀은 너비 1.5㎝, 길이 3㎝의 종잇장처럼 얇은 소프트 로봇을 개발하고 지난달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어요. 종잇장처럼 얇은 이 소프트 로봇은 전극에 전기를 주입하면 열가소성 수지가 수축하거나 팽창해 로봇이 앞으로 내딛는 원리입니다. 한 걸음을 내딛는 데 0.05초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땅콩만 한 이 로봇은 몸무게 60㎏인 사람이 발로 밟아도 끄떡없는 내구성을 자랑합니다. 자기 몸무게의 6배에 달하는 '땅콩'도 무리 없이 운반해내고요. 이 로봇의 구조적인 단순성과 가성비를 생각하면 앞으로 로봇이 정찰이나 재난 구조에 사용될 날도 금방 찾아올 것 같습니다.



주일우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