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새먼의 국제뉴스 따라잡기] 혼란 만든 캐머런, 협상하려던 메이, 밀어붙이는 존슨

입력 : 2019.09.06 03:09

[브렉시트와 영국 총리]

캐머런 "브렉시트 국민투표 부치자" 투표 후 EU 탈퇴로 가닥 잡히자 사임
다음 총리 메이, EU와 조건 협상… 의회서 협상안 4차례 부결되며 실각
현재 존슨 총리의 '노딜 브렉시트' 여·야 모두 제동 걸며 혼란 가중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걸 브렉시트(Brexit)라 하죠. 3일 영국 의회에서 브렉시트를 놓고 드라마가 펼쳐졌어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7월 총리가 되기 전부터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며 브렉시트를 강하게 밀어붙여 왔어요. 노딜 브렉시트는 유럽연합(EU)과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걸 뜻해요. 엄청난 혼란을 불러올 게 분명한 조치죠.

그러자 이날 밤 의회가 존슨 총리에게 반기를 들었어요. 야당인 노동당뿐 아니라 여당인 보수당 의원들까지 가세해 '노딜 브렉시트'에 제동을 거는 결의안을 심야 투표에서 가결한 거예요.

존슨 총리는 "의회를 해산하고 다음 달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맞서고 있어요. 브렉시트 때문에 이미 영국 총리 두 명이 사임했어요. 존슨 총리는 이번 난국을 헤치고 살아남을까요, 아니면 브렉시트 때문에 총리 관저에서 이삿짐 싸는 세 번째 총리가 될까요?

섣불리 국민투표 했다 실각한 캐머런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10년 영국 총선에서 승리해 13년에 걸친 노동당 정권을 끝내고 보수당 정권을 세웠어요. 당시 43세로, 1812년 42세로 총리가 된 로버트 젱킨슨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둘째로 젊은 총리였어요. 마거릿 대처(1925~2013) 총리에 이어 보수당을 한 번 더 역사의 중심에 올려놓을 정치 신동으로 주목받았어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 문제가 영국 총리들 발목을 잡고 있어요. 데이비드 캐머런(왼쪽)은 2016년 섣불리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사임했고, 테리사 메이(가운데)는 협상안이 통과되지 않으며 지난 7월 실각했어요. 보리스 존슨 현 총리는 브렉시트 강행을 주장했지만 의회가 반발하고 나서 미래가 불투명해졌어요.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 문제가 영국 총리들 발목을 잡고 있어요. 데이비드 캐머런(왼쪽)은 2016년 섣불리 국민투표를 강행했다 사임했고, 테리사 메이(가운데)는 협상안이 통과되지 않으며 지난 7월 실각했어요. 보리스 존슨 현 총리는 브렉시트 강행을 주장했지만 의회가 반발하고 나서 미래가 불투명해졌어요. /게티이미지코리아·AP 연합뉴스

그는 "EU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2015년 총선에서 다시 승리했어요. 그는 어차피 국민투표를 해도 EU 잔류파가 이길 거라고 봤지만, 그건 오판이었어요. 2016년 6월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영국 국민 과반(51.9%)이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진 거예요.

캐머런 총리는 투표 결과가 나오자마자 사임했어요. 떠나는 그의 등 뒤로 "국익을 따지기보다 자신이 총선에 이길 것만 노리고 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쳤다가 이 혼란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지요.

어떻게든 협상하려다 실각한 메이

캐머런 총리가 낙마한 뒤 같은 보수당의 테리사 메이 당시 내무장관이 바통을 이어받았어요. 메이 총리도 취임 당시엔 대처 전 총리 이후 26년 만의 여성 총리로 국민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어요.

하지만 메이 총리에겐 장애물이 많았어요. 메이 총리는 원래 EU 잔류파였는데, 총리가 된 뒤엔 브렉시트를 완수해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됐어요.

메이 총리는 EU와 브렉시트 조건을 협상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는 협상안을 가져오는 건 불가능했어요. 메이 총리는 올해 3월로 예정됐던 탈퇴 기한에 맞춰 세 차례 브렉시트 협상안을 내놓았지만 번번이 의회에서 퇴짜를 맞았어요.

메이 총리는 어쩔 수 없이 오는 10월로 탈퇴 기한을 미룬 뒤, 야권의 주장대로 제2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내용을 보탠 네 번째 안을 내놓았어요. 하지만 같은 보수당조차 격렬하게 반발했어요. 결국 메이 총리는 지난 7월 총리직을 내려놨어요.

협상 없이 탈퇴하겠다는 존슨

메이 총리가 어떻게든 EU와 합의안을 만들어 브렉시트를 하려 했다면, 후임자인 존슨 총리는 합의안 없이도 탈퇴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에요.

그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부터 EU 탈퇴를 줄기차게 주장해왔어요. 그는 한편으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연설가이자, 유머 감각이 뛰어나고 '큰 그림'을 보여줄 줄 아는 정치인이에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원칙도 없고, 거짓말도 잘하고, 잘난 척만 하지 디테일에 약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어요.

브렉시트가 영국 국민을 분열시켰듯, 브렉시트를 주장해온 존슨 총리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과 혐오하는 사람으로 유권자들을 양분하는 인물이지요.

그는 총리 취임 직후부터 EU 탈퇴 기한인 오는 10월 31일이 되면, 노딜 브렉시트를 강행하겠다고 밝혔어요. 영국 의원 대다수는 그에 반대하고 있어요. 문제는 지금까지 메이 총리가 내놓은 협상안을 의회가 모두 거부해 이젠 찬반을 논의할 협상안 자체가 없다는 점이에요.

존슨 총리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듯, 지금 의회를 해산한 뒤 예정대로라면 내년 봄에 치러야 할 총선을 다음 달로 당겨서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뜻을 밝혔어요.

정말 그럴 수 있을지는 불투명해요. 조기 총선을 실시하려면 의원 과반이 찬성해야 해요. 보수당이 제1당이긴 하지만 최근 존슨 총리 반대파가 탈당하는 바람에 의회 과반을 채우지 못하고 있어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한 상황이지만, 브렉시트가 영국 정치를 망가뜨린 것만은 분명해 보여요. 프랑스,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도 EU 탈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영국 상황을 보더니 요즘은 그런 소리가 쑥 들어갔거든요.



앤드루 새먼·아시아타임스 동북아특파원 기획·구성=양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