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선생님

[재미있는 과학] 폭염에 빨리 늙는 모기, '여름잠' 자며 가을 기다리죠

입력 : 2019.09.05 03:00

[모기의 생존전략]
한여름 기온 오르면 활동 힘들어 생존전략 수정해 여름잠 자기도 해요
모기 수명은 최대 6개월 정도… 11월에 성체 되면 겨울잠 자며 월동
너무 더우면 유충이 성충될 확률 줄어… 물온도 28도에선 100마리 중 3마리꼴

이번 여름도 뜨거운 날들이 연일 계속됐어요. 그런데 뭔가 허전하지 않았나요? 여름밤이면 항상 우리 귓가에서 들리던 '왱' 소리의 주인공, 바로 모기가 예전보다 줄었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요?

물 온도 올라가면 생존율 급감

지구상의 모기는 3만5000종이 넘어요. 알과 유충, 번데기를 거쳐서 성체가 되는 곤충이죠. 성체가 되기까지는 물에서 지냅니다. 모기는 한 번에 알 100~150개를 낳아요. 알은 물에 잠긴 상태에서 보통 2~3일이면 부화해 장구벌레라고 불리는 유충이 됩니다. 이 상태로 약 10일을 보내면 번데기가 되고, 번데기로 2~3일 정도 지나면 등 쪽이 T 모양으로 갈라지면서 성체가 나와요.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물 온도'가 영향을 줍니다. '흰줄숲모기'가 대표적이에요. 검은색 몸에 하얀 줄무늬가 있어서 '아디다스 모기'라는 별명이 붙었답니다.

[재미있는 과학] 폭염에 빨리 늙는 모기, '여름잠' 자며 가을 기다리죠
/그래픽=안병현
이 모기는 주로 풀숲이나 공원, 야산 등지에서 발견됩니다. 2018년에 과학자들이 물 온도가 17도, 21도, 24도, 28도일 때 흰줄숲모기 유충의 생존율과 생장 정도를 비교해봤어요. 번데기가 성충이 되는 '우화율'이 21도에서 가장 높았고(약 20%), 24도와 28도에서는 모두 3.3% 수준이었어요. 물 온도가 21도 정도일 때는 다섯 마리에 하나꼴로 성충이 되는데, 이보다 날이 더워지면 100마리 중 3마리만 성충이 되는 겁니다.

모기는 30도가 훌쩍 넘는 여름철에 활동하지만, 실제로 모기 유충이 번식하는 물웅덩이 등은 그늘진 곳에 있어요. '물'이라서 지표면이나 대기만큼 온도가 올라가지도 않고요.

질병관리본부 자료 등에 따르면 낮 기온이 32도가 될 때까지는 모기 개체 수가 점점 증가했지만, 32도가 넘으면 오히려 수가 줄어들었어요. 고온으로 인해 모기가 번식하는 물웅덩이의 온도가 너무 올라가버렸거나 증발해서 번식할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죠.

'낮잠' 자는 모기, 이제 '여름잠' 잔다?

모기는 '주간 활동종'과 '야간 활동종'으로 나뉩니다. 주간 활동종은 아침 무렵과 오후 4시부터 해가 질 무렵 사이에, 야간 활동종은 밤사이에 활동하지요.

뜨거운 낮 동안에는 두 종류 모두 어둡고 습한 곳을 찾아 쉬면서 온도가 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마치 낮잠을 자는 것처럼요.

여름의 상징인 모기가 더위를 못 견디는 이유는 뭘까요? 모기는 온도가 높은 환경에서 활동하면 대사량이 늘어서 노화가 촉진돼 수명이 짧아져요. 낮 동안 쉬는 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써서 오래 살아남으려는 모기의 전략입니다.

모기는 길게는 6개월까지도 살아요. 여름이 지나 기온이 낮아지면 월동을 합니다. 10월, 11월에 성체가 된 모기는 이듬해 봄까지 먹이를 먹지 않고 겨울잠을 자면서 버티죠. 도시에서는 정화조나 하수구, 지하실, 보일러실 등 어둡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곳에 앉아서 겨울을 납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여름 온도가 너무 높아지니까, 봄에 태어난 모기가 겨울잠 아닌 '여름잠'을 자며 활동하기 좋은 가을을 기다리는 모습도 포착됩니다.

10여년 뒤에는 3월부터 활동?

1981~2011년까지 전국 '작은빨간집모기'의 활동과 분포를 분석한 2015년 연구에 따르면 모기는 해마다 활동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요. 1981년에는 5월 중순에 처음 출현했지만, 2006년에는 4월 초부터 활동을 시작했어요. 기후변화 등으로 날씨가 더 빨리 따뜻해지면서 모기 활동 시기도 더 일러졌다는 겁니다. 추세대로라면 2031년에는 작은빨간집모기의 첫 출현 시기가 3월 말로 당겨질 전망입니다.

또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9월은 물론 10월에도 활동하는 흰줄숲모기와 빨간집모기 수는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생물은 환경 변화에 따라 생존 전략을 수정합니다. 그러니까 모기 걱정 없이 여름이 지나갔다고 방심하면 안 됩니다. 앞으로는 달 밝은 가을밤에 모기가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매년 7억명이 모기에 병 옮아… '모기 불임 수술'로 퇴치 나서요]

세계보건기구는 2015년 모기 때문에 병에 걸리는 사람이 한 해 7억명이 넘는다고 발표했어요. 모기는 말라리아와 일본뇌염, 뎅기열 등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죠. 그래서 세계적으로 모기를 없앨 방법을 계속 연구하고 있어요.

2018년에는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연구팀 등이 유전자 가위 기술로 '불임 암컷 모기'를 만들었어요. 모기의 유전자를 조작해, 번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특정 유전 형질이 다음 세대로 계속 전달되도록 했죠. 600마리의 모기를 대상으로 실험했는데, 불임 유전자가 대를 이어 전달되면서 7∼11 세대 만에 전체 모기가 불임으로 멸종했어요.

또 지난 7월에는 중국·미국·호주 연구팀이 모기의 생식 능력을 감소시키는 세균(볼바키아)을 감염시키는 방식으로 모기들을 '불임 수술'시킨 사례를 네이처지에 발표했어요. 이 모기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더니 1년 뒤에는 성체 수가 실험 전의 17% 수준으로 줄었고, 2년 뒤에는 5%로 줄었어요. 모기 퇴치에 상당한 효과를 본 것이죠.



안주현 박사·서울 중동고 과학 교사 기획·구성=양지호 기자